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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여름이의 새 구두 - 최은 (글,그림)

by 89K Elisha 2021.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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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아이들 서포터즈 하늬바람2기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세상에서 ‘기다림’을 읽었다.

 얼마 전에 마우스와 우쿨렐레라는 악기를 샀다. 마우스는 금요일에 우쿨렐레는 일요일에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는데, 주문을 하고 보니 월요일이 대체 공휴일이었다. 아…. 하는 생각과 함께 시작된 기다림은 나를 초조하게 했다.

 이상하게 그동안 잘만 하던 여러 가지 작업들이 주문해서 기다리는 마우스가 아직 안 왔다는 이유로 잘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심지어 기존에 쓰던 마우스가 전혀 고장이 났다거나 사라진 것도 아니었는데! (마우스 쓸 일이 많아져 버티컬 마우스로 바꾸었다)

 그리고 우쿨렐레……. 고작 하루 이틀의 시간이었다. 일요일 오후에 주문을 했고, 수요일 적어도 목요일까지는 반드시 받아 볼 것이었는데, 심지어 칠 줄도 모르는 악기를 정말 목이 빠져라 아니 눈이 빠져라 기다렸다. 악기를 주문한 사이트에 들어가서 이제나 보내시려나 저제나 보내시려나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게 고작 며칠이었는데……

 그 초조한 기다림은 어쩌면 습관 같은 거였다. 사실 당장에 급한 것도 아니고, 급했다면 오프라인으로 직접 가서 구매해 왔을 것을 굳이 인터넷으로 주문해놓고는 혼자서만 초조해했다.

 쿠팡 로켓배송이니, 마켓 컬리의 새벽 배송이니 이런 서비스가 생기고 때문에 택배기사 아저씨들이 힘들어진 것 같아, 그거 좀 기다리지 라고 속으로 끌끌 차던 나도 막상 기다림의 주체가 되니 나 자신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마우스와 우쿨렐레를 무사히 손에 들고 나서야 나의 초조함에 자조를 던졌다. 너도 똑같아하면서

 그런 와중에 손에 들게 된 한 권의 그림책에서 나는 다시 한 번 ‘기다림’을 배웠다.

 최은 작가님의 [여름이의 새 구두]

 

여름이의 새 구두 - 최은



 귀여운 꼬마 여름이는 새 구두를 주문했다. 내 발에 딱 맞는, 그리고 나만을 위한 구두를 받기 위해서는 무려 10일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할 터였다 어른들에게도 길게 느껴질 열흘의 시간은 하루하루를 온전히 느끼면서 살아갈 아이에게는 더 긴 시간일 것이다.

 이 책은 여름이의 기다림의 시간을 그린 책이었다. “나는 잘 기다려요”라고 말하는 여름이를 보며 나는 자꾸만 새어 나오는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 


 여름이가 나열하는 작은 기다림들, 기다림은 길이만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여름이와 함께 살펴보니 두께도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선물을 급식을 그리고 화장실을 기다리는 것처럼 때로는 조급하게 때로는 편안하게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두 발에는 새 구두가 신겨져 있다. 특히 마지막에 구두를 받으러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지난 열흘보다 더 길었다는 것을 읽으면서 세상의 시간과 마음에 시간의 다름에 대해 생각했다. 기다림이라는 것을 정말 잘 표현한 부분이 아닐까 싶었다. 

 

 여름이의 기다림은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저씨는 잘 만들고, 나는 잘 기다려요"라는 말은 그냥 "나는 잘 기다려요"라는 말 보다 더 의미 있게 나에게 다가왔다. 기다림이 초조함이 되는 이유는 그 속에 담긴 불안 때문인 것 같다. 혹시 어떤 일이 조금이라도 틀어져서 더 늦어진다면, 받을 수 없어진다면, 나의 기다림에는 불안과 초조가 담겨있지만, 여름이의 기다림에는 설렘과 기쁨이 가득했다. 아저씨가 분명 자신의 신발을 '잘 만들 것'이라는 믿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다림 자체가 여름이에게는 하나의 성장을 의미했다. 어른들이 느끼기에는 단순한 일이지만, 어린 여름이에게는 아마 첫 기다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걸 해냄으로 이제 여름이는 숫자를 이제는 100이나 셀 수 있고, 달력과 시계를 볼 수 있는 것처럼, 기다림을 아는 아이가 되었다. 여름이가 결국 두 발에 꼬옥 맞게 신은 신발이 어땠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여름이는 열흘의 시간 동안 성장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호아킴 데 포사다 작가님의 [마시멜로 이야기]라는 책이 있다. 아이들에게 맛있는 마시멜로를 보여주고, 잠시 나갔다 올 테니까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잘 기다리면 마시멜로를 두 개 주겠다고 하고 밖으로 나갔다 왔을 때, 정말로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잘 기다린 아이는 훗날 반대로 그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먹어버린 아이에 비해서 좋은 직장과 좋은 연봉을 받는 성공한 인생을 산다는 어떤 실험이 적힌 책이었다. 이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의 나의 욕망을 쫒기보다 지금 내가 정말로 해야 할 일을 알고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결과가 오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니까 이렇게 '기다림을 아는, 그리고 그 기다림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도 믿을 수 있는 아이'가 되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분명한 성장이다. 

 

 내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그렇게 받은 마우스는 가죽으로 된 나의 마우스패드에는 심히 뻑뻑했고, 우쿨렐레는 당연하지만 끝내주게 멋진 음악을 들려주지 않았다. 마우스를 위해 다시 한번 마우스패드를 주문하고. 우쿨렐레는 심지어 기다림에 더하여 연습과 노력 그리고 손가락의 아픔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고작 초조함을 견디지 못해 포기한다면 나는 영원히 우쿨렐레로 멋진 음악을 연주하지 못할 것이다.

 

 여름이 역시 그렇게 받은 구두가, 완벽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보다 좀 크거나 적어서 다시 수선을 해야 할 수도 있고, 발이 자라서 그렇게 좋아하는 구두를 더 이상 신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결말이든 이 그림책에서는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여름이는 구두를 잘 기다렸고, 아저씨는 구두를 잘 만들었다. 그것으로 되었다. 앞으로 여름이의 인생에 어떤 기다림의 시간이 오더라도 여름이는 잘 기다릴 것이다. 이 책은 결말까지 완벽했다. 


 우리 인생에는 기다림이 필요한 때가 있다. 심지어 엄청 많다. 세상이 너무나도 휙휙 바뀌는 것 같아서 그 속도를 따라 가려다 보니 조금만 늦어도 내가 뒤쳐지는 것 같고, 그때에 만난 기다림은 나를 초조하게 만들고 때로는 화가 나게 만든다. 그러나 기다려야 할 때 에는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고,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고, 하필이면  설레면서도 초조한 기다림 속에서 내 손에 들어와서 인생의 중요한 교훈을 남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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