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자마자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해야 잘하게 될지 알고 태어나면 좋을 텐데......
얼마 전 영화 [소울]을 봤다. 하고 싶은 일을 쫒다가 그 기회를 잡았던 어떤 순간! 그는 사고를 당해 '천국'으로 가는 길목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도저히 그 운명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는 결국 그 길에서 벗어나 어떤 한 공간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은 '태어남'을 준비하는 아이들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할지를 정해야 지구를 향할 수 있었다.
솔직히 그 영화를 보면서 의문이 생겼다. 나도 있을까? 나도 내가 선택한 나의 길이 있는 것일까? 정말로? 1년 1년 나이는 먹어 가는데, 아직까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면 지금의 내 나이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자신의 일을 이룩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고 시작한 것일까?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문득 주위를 둘러보면 사람들은 모두 저기 앞서 뛰어가고 있는 것 같다. 내 친구 중에서도 그리고 나보다 어린 후배들도 각자 자신의 몫을 해 내고 있는데, 나는 아직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깊은 늪 속으로 계속해서 빠져든다.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모두 쓸데없는 일처럼 느껴져서 아무도 없는 곳으로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고민 안 하겠지? 이건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거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자꾸만 빠져나올 수 없는 늪을 스스로 들어가길 반복하던 중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우희경 작가님의 [생계형 긍정주의자 선언]
작가님에 대해 알게 된 건 원데이 작가수업에서였다. 줌으로 했던 그 수업은 내가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새벽에 남편까지 깨워서 의논을 하고 듣게 된 수업이었다. 일단 원데이라 시간적으로도 가격 면에서도 부담이 적어서 신청을 했었는데, 뭔가 새로운 세상을 만난 느낌이었다. 아, 이렇게 해야 작가를 할 수 있구나. 많이 배웠다. 작가님의 당당함과 무엇보다 나 역시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줄 콘텐츠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클래스를 들을 때에는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했는데, 또 시간이 지나니 점점 멀게만 느껴졌다.
나는 여전히 게으르고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사람이며 일만 벌이는 인간인데, 작가님은 또 한 권의 책을 내시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셨다. 나와는 정말로 다른 세상에 사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사람이 다를 수 있을까? 작가님은 내가 하는 이런 고민은 하지 않으시겠지? 이렇게 머물러 있다는 생각도 조급하게 인생을 바라보면서 우울해 하시지도 않으시겠지? 했다. 정확히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사실 책 자체에 그렇게 많은 기대가 없었다. 이런 종류의 책은 너무나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제 세상이 달라졌으니 글쓰기로 또는 그림으로 회사를 다니지 말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면 너무나도 행복하다고, 자유롭다고 하는 그런 책이겠거니 했다. 그러니까 나처럼 살아봐!! 하고 주장하는 책이 아닐까 지레짐작했다.
그런데 책을 펼치자마자 몇 장 읽지도 않았는데, 내 생각을 완전히 깨 부수었다.
처음에 작가님의 어린 시절 같은 반의 어떤 학생을 '부러워'했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 후에 이어진 내용들도 비슷한 내용이었다. 어렸을 때, 또는 젊었을 때 누군가를 부러워했다거나 세상 또는 사회가 이야기하는 어떤 '정답'에 나를 맞추어 헉헉대며 쫓아가다가 문득 돌아봤을 때 작가님 자신을 잃어가는 것 같았다는 이야기, 결국 방향을 돌려 다시 '나'를 찾아 나섰고, 지금은 내가 원하는, '나의 길'을 찾아 걷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이렇게 걸어 나가다 보니, 작가님의 '이전의 삶'역시 그녀를 이룬 삶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서른살이 되면 한 가지 분야에서 일가를 이룰 줄 알았다. 소위 대기만성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모두 서른 살쯤 되면 어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다고 하지 않았던가. 서른 살을 목전에 둔 스물아홉 살은 여전히 불안했고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기엔 아직 어린 나이였다.
생계형 긍정주의자 선언 - 우희경 (p.203)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 자신', 그리고 '나의 길'이다. 작가님을 따라서 글을 쓰라거나 작가님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라고 강매(?)하는 책이 아니었다. 흔희 말하는 N 잡러 시대에 워낙에 이런 일을 해봐 이런 길을 가봐! 하고 유혹하는 책들이 워낙에 많아서 이 책도 당연히 그런 책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런 세상 속에서 내가 나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었다.
나보다 더 앞서 나아가고 있다고, 그 삶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다고 생각했던 작가님 역시 한편으로는 삶이 불안하고,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고 또 때로는 도망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다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거구나 하는 위로를 받았다. 동시에 작가님이 그런 자신의 삶 속에서 마음을 다 잡으며, 헤쳐나가 자기 자신을 찾아나간 그 마음가짐과 행동들이 모두 삶의 지혜가 되어 나를 두드렸다.
사람마다 속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일에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내공'을 쌓는 시간이 필요하고, 임계점을 넘어서면 그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볼 수 있다.
생계형 긍정주의자 선언 - 우희경 (p.179)
특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 부분이 작가님의 후배 중 한 사람이 무려 하나의 회사를 일구어 낸 CEO임에도 ‘나는 아직 이룬 게 없다’고 고민한다는 부분이었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특히 마치 예전에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를 본 기분을 다시 느꼈다. 지금의 나혼산이야 마치 급을 나누는 것 마냥 스타들의 호화롭고 동떨어진 일상을 보여주지만, 내가 한창 좋아했을 때의 나혼산은 그렇게 동떨어져 보이는 스타들도 삶을 들여다보면 나와 비슷한 모습이라는 데에 공감과 친근함을 느끼면서 봤었다. 그리고 그들이 잘 되는 것을 보면, 그래 나도 언젠가! 하며, 꿈을 꾸곤 했었다. 이 책이 내게 그런 느낌을 다시 가져다주었다.
아! 밖에서 보면 분명 성공한 인생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언젠가 내가 이루고픈 곳에 있는 작가님도 계속해서 도전하고 수도 없이 실패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환경이 발목을 잡고, 때로는 죄책감이 짓누르기도 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면서 살고 있구나, 그런 치열하고 불안한 삶이 현재 진행 중이구나 하는 위로를 받고 동시에 작가님의 삶에 깊은 공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CEO후배 이야기를 하면서, 작가님께서 하신 이야기로, 그녀가 분명 지금의 삶을 꿈꿨을 때가 있었고, 그 목표를 이루자 목표를 이룬 삶이 현실이 되고 일상이 되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아마 작가님은 (이것도 내 생각이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그 삶이 예전의 내가 꿈꾸던 바로 그 삶일 것이다.라는 말과, 결국 인간은 계속해서 성장해 나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을 테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더하여. 나보다 더 높이 도약한 수많은 사람도 계속해서 삶이 위태롭고, 인생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는 불언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면서 다시 한번 이 불안이 또는 가끔씩 나를 덮쳐오는 이 무력감이 나 하나의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어 어쩌면 이기적인 마음일지도 모르지만 안도했다.
이를테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해냈다고 해서 그 순간이 곧 자신의 인생에 정점은 아니라는 거다. 오히려 꿈꾸던 일을 해내고 나면 허무해지는 경우도 있다. 목표를 손에 쥐고 나면 또다시 일상이 되기 때문이다.
생계형 긍정주의자 선언 - 우희경 (p.210)
이 책은 ‘나처럼 살아봐’!라고 주장하는 책이 아니었다. 물론 작가님께서 본인의 이야기를 하고, 본인의 생각을 담은 책이지만. 그 메시지는 ‘너 답게 살아라’라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던, 사회가 뭐라라던, 그리고 내 옆에 친구가 나를 앞질러 가는 것 같아 조급한 마음이 생기더라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 지를 찾으며 나만의 속도에 맞추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 위해서는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의 모든 페이지가 말하고 있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좋은 모습, 싫은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며 맘속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다른 사람보다 더 멀리 가지 않아도, 더 높이 서지 않아도, 사회의 기준에 적합한 사람이 되지 않을 지라도 행복하게 나의 길을 걸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가득 담고 있는 책이었다.
역시 책을 쓰려면 그 대상을 굉장히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종종 방송에서도 이야기하고, 사람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나는 책운(?)이 굉장히 좋은 편이다. 어떤 일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거나 삶의 지혜가 필요한 순간에 상황에 딱 맞는 책이 나를 찾아온다. 이 책도 그런 책 중에 하나였다. 지금 당장 내가 이뤄 놓은 것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은 이런 고민 안 하고 사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고 고민이 깊어진 때에 마치 선물같이 이 책이 나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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