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아이들 서포터즈 하늬바람 2기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 받은 몇 권의 책들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이 몇 권 있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만화책으로 된 삼국유사와 페이지를 넘겨가며 퍼즐을 풀어나가는 책이 뇌리에 굳게 박혀있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집에 꽂혀 있던 다양한 전집들부터 초, 중,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까지 읽은 수많은 책 중에 단연코 기억에 남는다. 어른이 아이에게 특히 부모가 아이에게 읽게 하는 책은 어쩌면 지금의 나처럼 큰 의미로 남을 수도 있다.
누군가를 위해 책을 고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책을 소개하는 방송을 진행하면서 그리고 북큐레이터 과정을 공부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예민하고 신중해야 하는 일인지를 느끼고 또 느낀다. 그건 단순히 '네가 추천 해준 책 재미없더라'라는 문제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요즘 들어 특히 느끼고 있다. 하물며 아이들을 위한 책을 고르는 일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아이들의 세상은 단순하다. 어른들처럼 이런저런 경험이 쌓여 책에 있는 내용을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과 다르다. 그래서 어릴 때 어떤 책을 읽도록 하는가가 정말로 중요하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책들이 쏟아지고, 그림책도 그중 하나인데, 어떤 기준으로 어떤 책을 아이에게 읽혀야 하는지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마치 회색을 모르는 듯 모든 것을 흑과 백으로 분명하게 가르는 것은 아이들의 특성이 아닐까 싶다.
슬픈 거인 - 최윤정 (p.135)
100퍼센트의 해답이 될 수는 없지만, 나름의 기준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을 이번에 서포터즈 활동으로 받았다. 최윤정 작가님의 [슬픈 거인]
'어린이 책을 고르는 어른들을 위하여'라는 부제를 가진 이 책은 말 그대로 어린이 책을 어떻게 고를지에 대한 책이다. 어린이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부터 접근해 나가는 이 책은 우리가 책을 고를 때 무엇을 지양하고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책을 골라야 하는지 작가님이 세운 기준에 따라 보여준다. 다양한 책을 예시로 보여주면서 그 책에 대해 자세하게 분석해 주셔서 몇몇 책은 영업을 당해 사게 되었다.
책은 세상을 간접적으로 배우는 하나의 수단이다. 아이들 아니, 한 개인이 볼 수 있는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작아서 (물론 열심히 경험해 나간 사람들은 다르겠지만...) 책은 시야를 넓히고 세상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세상에 많고 많은 책을 다 읽을 수 있으면 너무나도 좋겠지만,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책을 고르는데 굉장히 신중할 수밖에 없다. 이 책 한 권만큼 아이의 세상이 넓어진다고 생각하면 그냥 아무 책이나 던져 줄 수 없는 노릇이니까
문제는 책을 쓰는 사람도 출판을 하는 사람도 그리고 책을 고르는 사람도 '어른'이라는 데에 있다. 아이들이 정말로 배워야 하는 것 정말로 느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어른의 입장에서 동화를 쓰다 보니 자꾸만 공백이 생긴다. 아이들은 흥미를 잃거나 남는 게 없는 독서를 하게 된다.
작가님께서 제시하신 예시 중 하나는 '이혼가정'에 대한 내용인데, 어른의 입장에서 그 '이혼'을 정당화한다거나 아니면 얼토당토않게 문제를 해결해 버리는 등의 동화는 아이들에게 유익이 될 수도 위로가 될 수도 없다. 오히려 '이혼'이라는 것이 '잘못된 것'인 것 마냥 보여줘 버리게 되어 상처가 될 수도 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이를 통해 위로를 주는 것만으로도 동화는 책은 그 할 일을 다 하는 것이다. 굳이 해결하려 하거나 이상적인 것을 억지로 짜 맞추어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삶의 결을 자세히 들여다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하다. 문학은 힘이 세지만 사회를 변화시키지는 못한다....(중략)... 그런데 동화작가들은 아직도 현실보다는 이상 속에 사는 것일까?
슬픈 거인 - 최윤정 (p.135)
세세한 것 까지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책을 고르려고 하다 보면 머리가 아플지도 모르지만, 다행히 작가님께서 다양한 책을 예시로 보여주시면서 어떤 책이 어떤 부분에서 부족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좋은지를 잘 설명해 주셨다. 내가 지금 어린이 책을 고를 기준이 필요하다면, 작가님께서 소개해 주신 책을 한 권 한 권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을 했다.
책을 소개하면서 작가님께서 요약을 하시고 또 작가님이 세우신 기준에 따라 평가를 하시면서 책을 추천 또는 비추천해 주셨는데 이 부분은 특히 서평에 대해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은 그야말로 서평으로 구성되어 있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덕분에 개인적으로는 서평에 대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사실 나중에는 책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구나, 또 이런 관점에서 이렇게 평가할 수 있구나 하면서 책을 읽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작가님께서 직설적으로 비판을 많이 하셔서 나중에는 그럼 읽을 책이 없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또는 이 책이 책을 '고르는'사람들을 위한 책인지 아니면 '쓰는'또는 '출판하는'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해 쓰인 책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물론 이건 뒤집어 말하면 책을 출판하고 쓰는 사람들에게 어떤 책을 써야 하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 지의 뱡향을 제시해 주는 것이기도 하고, 또 이런 출판문화를 만드는 것은 결국 책을 고르는 사람 또는 독자들이기 때문에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역시 그래서 어떤 책을 고르는 게 좋은 것일까?라는 데에 대답은 각자 찾아야 할 것 같다.
읽기 어려운 책인 것 같아서 겁을 내고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책이 휙휙 잘 넘어가서 깜짝 놀랐다. 서평 쓰기는 사실 조금 어려웠지만, 역시 이런 책을 많이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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