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블라 오디오 방송 주제를 '환경'으로 정해놓고, 그 날 개인적인 사정으로 휴방을 했다. 그리고 휴방을 결정하자마자 이 책을 주문했다. 그리고 그 다음주에 이 책으로 방송을 했다. 그림 책임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이야기로 방송을 할 수 있었고,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추천했다. 그만큼 너무 좋았다.
강경수 작가님의 [눈보라]
책을 처음 펴자마자 마음이 불편해졌고 아팠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 심장을 꼭 쥐었고, 책을 덮으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순간적으로 이 책을 어린아이들에게 보여 주어도 될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바로 응! 보여줘야지 반드시!라는 생각으로 고쳐먹었다. 많은 아이들이 그리고 더 많은 어른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그림책은 너무 짧아서 내용을 다루기가 조심스럽다. 아주 조금만 이야기를 하자면 얼음이 다 녹아버려서 너무 배가 고파진 북극곰 '눈보라'이야기. 결국 아주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되는데,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에 내려가는 거다.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행복해하는 판다의 모습을 보았다. '판다'라는 것은 모르지만, 일단 '얼룩 곰'.. 그것을 멍하게 보다 마을 사람들에게 걸렸고, 사람들은 눈보라를 쫓아낸다. 사냥꾼은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쏘아서 죽이겠다고 벼르게 된다. 이것이 이야기의 프롤로그 격인 시작점이고, 동화 같은 이야기는 이 뒤가 시작이다. 그리고 나는 아주 먹먹해졌다.
고작 쓰레기통을 뒤지는 북극곰을 쫓아내는 마을 사람들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물론 나는 어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마을에 곰이 나타났는데? 하는 어른의 생각이 불쑥... 그러나 아무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은 동화 속의 주인공. 온전히 눈보라의 시선으로 보니 마을 사람들이 참 나쁘게 느껴졌다.
이 책은 어른의 현실성을 가지고 보아도, 그리고 동화 그 자체로 보아도 마냥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일단 북극곰 눈보라가 마을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 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녹아버렸다는 것. (나는 이 부분 때문에 주제가 '환경'일 때 이 책으로 책방송을 했었다.) 우리는 우리가 접하는 모든 매체에서 자주 그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을 읽고 또는 듣는다. 그러나 마치 코로나 재난문자 같이 이제는 더 이상 우리에게 공포를 주지 못한다.
마취를 한 몸에 주삿바늘을 꽂는 느낌. 물을 틀면 물이 펑펑 나오고, 주위가 그렇게 오염되고 더럽지 않은 데다가 쓰레기 수거도 아직 잘해 간다. 뉴스에서 떠드는 문제들이 피부에 깊숙이 아픔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사실 나도 쓰레기 분리수거에 어려움을 종종 겪어 짜증이 나거나, 카페에서 텀블러를 쓰기보다는 일회용 컵에 커피를 마신다. 장바구니를 준비해 가지 않아 비닐봉지를 더 많이 쓴다.
환경은 그런 것 같다. 자연은 느리게 그러나 확실하게 아픈데, 우리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렇게 북극곰 눈보라가 마을로 와야 했던 이유도 슬프지만, 나는 사람들의 '차별'도 역시나 슬펐다. 왜 판다는 되고, 북극곰은 안될까? 배가 고팠을 뿐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고, 그저 쓰레기통을 뒤지기만 했을 뿐인데 사람이 무서워 오히려 도망가는 눈보라는 마을 사람들은 끝끝내 받아주지 않는다.
이런 차별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길고양이는 안되고, 집고양이는 되고, 백인은 되고, 유색인종은 안되고, 아시아인이 가지는 백인과 흑인 또는 동남아계 사람들을 보는 편견이 얼마나 심하고 다른지에 대해 다룬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조금씩 줄어들고는 있다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남아있다.
조금 핀트를 바꾸면 이런 것도 느낄 수 있는데, 북극에서 판다를 보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일 것이다. 마치 기적과도 같은 그러나 북극에서 북극곰은 가까이에 있다. 우리는 멀고 먼 기적을 바라서 곁에 있는 작은 행복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고작 그림책, 동화책을 보면서 너무 많은 생각을 한 것일까? 책을 다 읽는데 5분도 걸리지 않았고, 그림과 함께 꼼꼼히 꼼꼼히 보아도 과연 10분을 넘길 수 있을까 싶다. 그런데 나는 역시 이 책에 대해 말하자면 밤을 새울 수도 있을 것 같다.
동화책이지만 꼭 사서라도 모두가 읽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기억 한켠에 잘 놓아두었다가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눈에 보이면 한 번쯤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그 짧은 시간 수많은 감정이 왔다 갔다 할 것이다. 다시 한번 그림책이 가지는 힘을 느끼게 되었다. 어린이뿐 아니라 많은 어른들이 그림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불어 이 책은 정말 모든 사람들의 필독서가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면 좋겠다. 짧은 책이지만 엄청 애정이 생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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