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 13]과 [멋진 신세계]를 읽고 난 후 나는 조금 더 가벼운 소설을 읽고 싶었다. 비록 읽어야 할 책이 조금 쌓여 있는 상황이었지만, 조금은 두꺼운 그러나 분명 재미있을 것 같은 책 발터 뫼르스 작가님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읽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꽤 묵은 후기이다.)
[꿀벌과 천둥]처럼 두꺼운 책이었다. 찾아보니 720쪽 정도 된다고 했다. ([꿀벌과 천둥]은 700p이다.) 내 리디북스 설정으로는 드물게 1000페이지가 넘었다. 게다가 엄청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묘사는 가끔 너무 휘황찬란하개 길고, 철저하게 주인공 시점으로만 이루어진 터라 가끔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책을 덮어도 나는 계속 뒷 이야기가 궁금했고, 한참을 다른 일을 하다 문득 펼쳐도 다시 쉽게 몰입이 잘 되는 책이었다.
작가의 상상력이 너무 뛰어나서 쉽게 눈 앞에 상황이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럴 땐 친절하게 그림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그래픽 노블이 있다고 하니 그것도 읽고 싶어 졌다. 훨씬 더 내용 몰입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사실 상상력을 제한하는 만화나 영화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렇게 잘 상상이 안 되는 책은 만화나 영화가 도움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느낌이 다르기도 하고...
무튼 이 책은 사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책의, 책을 위한, 책에 의한 이야기였다가 (여기서 책을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 바꾸어도 괜찮다.) 어느샌가 점점 작가의, 작가를 위한, 작가에 의한 이야기로 변모해간다. 물론 주인공이 작가이기 때문이긴 하지만. 제목부터가 [꿈꾸는 책들의 도시] 그리고 주인공은 '공룡'이다. 절대 '인간'은 나오지 않고, 동물들과 괴물들과 도깨비와 공룡만으로 이루어진 책이었다. 아, 난쟁이도...
저는 실제로 그 도마뱀 종은 순전히 몸의 조직상 다름 아닌 작가로서의 작업을 영위하기 적당하게 만들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래 사는 것은 수작업이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중요합니다. 세 개의 손가락 끝에 달린 손톱은 필기도구를 쥐는데 이상적입니다. 도마뱀의 피부조직은 악의적인 비판을 막아 주는 가장 좋은 수단이고요.
[꿈꾸는 책들의 도시] 발터 뫼르스
이야기의 시작은 주인공의 대부시인, 단첼로트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시작이 된다. 많은 공룡이 시인이고, 젊은 공룡이 글을 쓸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대부시인을 가지게 되는데, 그 밑에서 그의 모든 것을 배워온 주인공 힐데군스트는 대부와의 마지막 대화를 전한다. 그리고 대부는 '여행을 하라'라는 말과 함께, 그가 만난 한 작품에 대해 말을 하며, 자신이 그 소설의 주인을 책들의 도시로 보내버린 '치명적인 실수'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꼭 그 소설가를 구해내라 말하며 숨을 거둔다.
결국, 주인공은 대부가 읽었다는 '완벽한'소설을 읽고 대부와 마찬가지로 크게 감명을 받아 그 작가를 찾아서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으로 떠난다. 완벽한 소설을 만난 이를 만나기 위해서 그 소설을 가지고 계속해서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작가를 찾아 헤맨다. 물론 관광도 하면서. 그리고 그 여정을 통해 우리는 '책 사냥꾼'이라던지 부흐하임이라는 책의 도시의 생리라던지,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변호사를 만나기도 하고, 비평가를 만나기도, 또 망해버린 작가의 씁쓸한 결말을 만나기도 하면서.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부분이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주인공의 성격부터 (일단 사람을 너무 잘 믿었다. 그리고 뭔가 겁이 많으면서도 천하태평하다는 느낌이었다.) 부흐하임의 생리라던가, 책 사냥꾼에 대한 이야기 등 이 부분은 책의 전반적인 세계관에 대한 정보를 독자에게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롤러코스터의 스릴을 충분히 만끽하려면 다소 천천히 진행되는 오르막길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올라가야 하므로.
그리고 주인공의 '진짜 모험'은 이야기의 중반부부터 시작이 된다. 이 부분부터 주인공은 책을 사랑하는 독자에서 점점 작가로 변모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정말 내 가슴에 깊게 박힌 수많은 명언(?)들이 쏟아지고, 모험은 점점 흥미진진해지기도 한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그가 말했다.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글을 잘 쓸 수 있는 자들이 있다. 그들을 작가라고 부르지. 그리고 작가들보다 좀 더 글을 잘 쓸 수 있는 자들이 있다. 그들을 시인이라고 부른다. 그다음에 다른 시인들보다 좀 더 글을 잘 쓰는 시인들이 있다. 그들을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아직 찾지 못했다. 그들은 오름에 도달할 수 있는 자들이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 발터 뫼르스
이 책에 대해 찾아봤을 때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작가, 또는 작가 지망생이라면 꼭 한번 보면 좋을 책이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세계관 구축과 스토리가 잘 쓰인 하나의 판타지 소설을 읽으면서 동시에 작가가 되고 싶으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이 배웠다. 그것은 직접적으로 전해지기도 했고, 주인공의 모험과 행동 그리고 주변인들에 의해 간접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게 좋은 책은 좋은 선생이 된다. 주인공의 모험은 내게 좋은 간접 경험이 되었다. 언젠가 오름에 도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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