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북으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어렸을 적, 그러니까 중학생 때 나는 학교에서 실행한 <남녀평등 글짓기>에 낼 글을 썼다. 주제는 '왜 여자들은 자기 편할 때만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체육시간이나, 뭔가 귀찮고 힘든 일을 할 때에는 '여성/남성'을 내세우는가?'였지만, 글짓기 취지에 안 맞다는 이유로 입상을 못했다. 뭐 입상을 하고 안 하고는 중요하지 않지만, 그때도 지금도 '평등'이란 단어를 자기 입맛에 맞게 고쳐 쓰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처음에, 이 책을 보고 조금 난감했다. '탈 코르셋'이라는 반응에 조금 예민해져서였다. 잘못된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있기 때문에, 이 책도 그런 부류의 책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책을 펼치지 못하고 한동안 고민했었다. 그러나,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이건 그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자유'에 관한 책이었다.
[나는 트렁크 팬티를 입는다] 최정화 작가님
예를 들어, 처음엔 역시 브래지어이다. 현재 남아있는 '코르셋'하면 역시 브래지어, 가슴을 조이는 이 브래지어를 하면 나는 아무리 내 가슴둘레에 맞추거나, 편하다고 소문이 난 것을 입어도 어김없이 체한다. 요즘 운동을 하면서 조금 조이는 브라탑을 입곤 하는데, 그럴 때면 마스크와 함께 내 숨을 조여 어지러울 정도로 산소부족을 경험하곤 한다. 작가님은 심지어, 요가 수업을 할 때, 이 브래지어를 벗어버리셨다. 심지어 요가를 가르쳐 주시는 분이 남성 분이신데,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녀가 브라탑을 하지 않고, 요가를 하더라도, 다들 각자 본인의 운동을 하는데에 (요가니까 수련이라고 해야 하나?) 바빠서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확실히 도전하기에는 어려운 영역인 것 같다. 그리고 솔직히 이 부분은 읽으면서 음 티를 안 냈을 뿐 한 번쯤은 다들 눈길을 보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나는 집에 있는 평상시에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살다가 밖에 나갈 때도 만약 옷이 충분히 두껍다면 굳이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운동을 할 때에는 꼭! 스포츠 브라 또는 브라탑을 하는데, (숨이 막히고 산소가 부족하게 느껴질지라도, 일단 내 덩치에 안 조이는 걸 찾기가 힘들어서 그렇다.) 그건 운동하기에 가슴이 걸리적거리고 불편해서다. 그러니까, 결국 브래지어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는 나의 선택의 문제인 건데, 이 선택은, 이 정말 개인적이기 그지없는 선택임에도 사회적인 시선이 따라붙는다. 작가님은 이게 씁쓸하다고 하셨다.
화사와 설리가 생각이 났다. 둘 다 '노브라'패션으로 사람들의 구설수에 올랐었는데, 폴란드에 살 때 많은 사람들이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밖을 돌아다니거나 일을 하기도 했다. 나는 처음에는 너무나도 놀랐는데, 나중에는 별로 신경을 안 쓰게 되었다. 나뿐 아니라 그 누구도 그걸 가지고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이 문제는 확실히 인식의 차이이고, 이 인식은 바꿔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하긴 했지만, 이 책은 사회적인 문제점을 꼬집고 비판하는 책이 아니라, 작가님이 세상에 시선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화장이 점점 얇아지고, 결국은 하지 않고, 또 예쁜 옷이 아니라 내 몸에 맞고 편한 옷을 찾게 된 과정들, 코 밑에 거뭇한 수염이나 겨드랑이, 또는 다리에 나있는 털들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 다른 사람의 시선에 휘둘리는 삶이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한 삶을 살아가는 과정과 용기를 보여주셨다.
사실, 작가님의 코 밑의 거뭇한 수염처럼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별로 띄지 않는 외모적인 결점은 내 눈에는 그렇게 잘 보이기 마련인데, 나 역시 그런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한두 개가 아니다 보니 그냥 내 몸이 약점 투성이인 것 같고, 특히 대학을 다닐 때에는 화장을 안 하고서는 동네 슈퍼에도 안 나갔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화장을 하는 날 보다 안 하는 날이 더 많다. 폴란드 생활을 지나서 지금은 별로 크게 생각하는 문제가 아니고, 특히 마스크를 하고 나가야 하는 생활이 길어지면서, 점점 먼 곳을 갈 때에도 굳이 화장을 안 하게 되었다. 몸도 마찬가지이다. 살이 찌면서 예전에 입었던 옷을 하나도 못 입고 많이 속상해했다. 그리고 차마 버리지도 못했다. 살 빼서 입을 거야! 하면서 혹독한 다이어트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지금 내 체형과 몸에 맞는 옷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살은, 건강을 위해서 그리고 기성복이 맞는 사이즈만큼만 줄여 보기로 마음을 먹고 있다. (요가 같은 운동을 함으로써 한 걸음 내디뎠다고 생각한다.)
남성, 여성의 시선이 아니라 인간대 인간으로서 그저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것, 그리고 타인의 선택이 피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면 그 선택에 대해 무례하게 굴지 말 것, 너무나도 당연하고 단순한 일이지만, 이렇게 목소리를 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싸웠고, 지금도 싸워가고 있다. 남자와 여자를 나누자는 것도 아니고, 남자의 권리를 내놓으라고 외치는 것도 아닌 그저 자기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자유를 달라는 것.
이 책은 그런 책이었다. 많은 생각을 했고, 가끔은 이거 너무 TMI인데? 했지만, 결국은 작가님의 솔직함과 유쾌함 그리고 용기에 박수를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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