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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 헤르만헤세 (안인희 옮김)

by 89K Elisha 2021.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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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책은 일단 '데미안'을 읽은 적이 있다. 사실 헤세의 책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높았고, 그중 데미안은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 책'으로 꼽히는 책이어서 기대를 많이 했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처음 느꼈던 생각은 

'응? 잘 모르겠는데?'였다. 

 

일단 나의 인생관 그리고 종교관과 많은 부분이 다르고, 전혀 다른 세상을 보는 느낌이었기 때문에 조금 더 많은 교양을 쌓아 다시 읽어야 하나? 조금 더 나이가 들어야 훌륭한 책으로 다시 읽을 수 있을까? 작가에 대해 공부를 좀 해야 할까? 하는 많은 생각들을 뒤로한 채 헤세의 책을 멀리했다. 

 

(가끔, 이렇게 엄청난 작가님들은 '작가님'이나 '선생님'등의 말이 붙지 않는다. 그냥 그 자체 고유명사에 모든 존경이 다 담기는 느낌이다)

 

그런데, 얼마 전 목사님과의 대화에서 이런 부분에 대해 말씀을 드렸는데, 헤세의 책을 좀 더 읽어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읽을 책이 쌓이고, 벌여놓은 일들 사이에서 헤세의 책을 손에 잡기란 쉽지 않던 중 

 

창비에서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이라는 책, 헤세가 나무에 관련해 쓴 시와 에세이를 모은 책의 서평단을 모집한다 하여, 당장에 신청을 했다. 사실 한편으로는 독일 사람들의 에세이나 교양서를 좋아하는데 그들이 재미는 없을지언정(?) 굉장히 깊은 통찰력을 가졌다는 편견 아닌 편견이 있기 때문에, 에세이가 너무나도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더불어 헤세의 시를 읽을 것이 좋았다. 

 

그리고 받게 된 

 

헤르만 헤세의 시와 에세이를 엮은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헤르만 헤세 의 나무들] 헤르만 헤세  (안인희 옮김)

 

 

먼저 책의 내용을 말하기 전에, 일단 책 표지 디자인이 정말이지 너무너무 예쁘다. 탐스러운 복숭아가 주렁주렁 열린 표지의 그림과 세로 쓰기로 쓰인 제목과 금박들 그리고 책의 옆면이 너무나도 고급스럽고 예뻐서 이 책도 책 자체로 소장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이렇게 표지에 관심을 많이 가지지 않았는데, 요즘은 포장을 열었을 때 보이는 책의 표지 디자인에 종종 매혹된다. 그리고 이 책은 그중에서도 탑에 드는 표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두었던 책을 처음으로 펼친 건 책을 받고 며칠이 지난 후 어느 카페에서였다. 강아지 하또의 목욕과 미용을 맡기고 옆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책을 펼쳤다. 그리고 첫 장에서부터 헤세가 나무를 바라보는 눈이 그리고 그 마음이 얼마나 따뜻한지를 느꼈다. 그리고 앞으로 그런 따뜻한 시선으로 자연에 대한 찬탄과 경배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 나무들의 이야기가 기대가 되었다.

 

 

나무는 언제나 내 마음을 파고드는 최고의 설교자다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 헤르만 헤세 (안인희 옮김)(p.7)

 

 

그리고 그렇게 '사랑하는' 눈으로 담은 나무들의 모습은 나에게 몰랐던 세계를 열어주었다. 그것이 뭔가 나 역시 나무를 사랑하고, 또 자연을 찬탄하게 되는 그런 세계는 안타깝게도 아니지만, 물론 그때도 지금도 인간에 의해 망가져 버린 각종 자연의 모습에 분노하고 화가 나면서도 또 그다지 변하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을 다시금 느끼긴 했지만, 사랑하는 자의 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눈 앞에 보이는 저 나무에 대해 얼마나 많은 지식과 어휘를 가지고 설명하고 묘사하고 나타내고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글로 옮길 수 있을까? 책을 읽다 보면 나는 생각도 못했던 아름다움을 읽을 수 있다. 나는 헤세가 쓴 함박꽃나무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정말 아름다운 꽃을 가진 나무였다. 여름 목련이라고도 한다고 하는데, 내가 생각한 목련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접하지 않았으면 나는 그냥 와 예쁘다.라고 생각하고 지나쳤을 것 같다. 이렇게 섬세하게 이 나무에 대해 묘사하고 그리고 이를 통해 삶의 통찰을 드러낼 수 있는 것, 그건 헤세여서 그리고 그가 훌륭한 작가여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헤세가 정말로 나무들을 숲을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자연을 사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느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자연의 기묘한 형태들을 바라보려는 성향이 있었다. 관찰이 아니라 그 본래의 마법에, 그 뒤에 얽힌 깊은 언어에 마음을 빼앗겼다.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 헤르만 헤세 (안인희 옮김)(p. 121)

 

 

그저 자신이 예전에 머무르던 곳에 대해 묘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풍부하게 부풀어 오른 마음이 드러났다. 그게 좋았다. 

 

헤세의 시를 읽는 것도 좋았다.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연과 행을 나누어서 담담하게 전개되는 헤세의 시는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고, 안정되고 평화롭게 만들었다. 소설로만 만나던 작가님의 에세이 그리고 시를 읽으니 뭔가 이 위대한 작가님과 더욱 친해진 것 같았다. 

 

그래, 전체적으로 고요하고 평화로운 책이었다. 전쟁을 말할 때도, 파괴를 말할 때조차 나는 평화로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글 속에 엄청난 통찰이 들어있고, 세상을 바라본 헤세의 눈이 담겨있어도 책을 읽는 이 시간이 어떤 공부 같은 것이 아니라 오랜만에 휴식이 되었다. 그래 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이것이었는데...

 

 엄청나게 자극적이거나 나를 자꾸 찌르는 그래서 흥미를 유발하지만 동시에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책이 아니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디게 책을 읽었지만, 어떨 땐 좀 재미가 없는데? 하고 느꼈지만 그래서 이 책이 그대로 나에게 '자연'으로 다가왔고, '힐링'이 되었으며 '휴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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