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묘했다. 굉장히 묘한 소설이다. 사실 책을 덮은 지금도 심장이 쿵쿵대는데, 그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일단 퀴어 소설임은 알고 책을 선택했다. 다만, 광고에서 미트코라는 주인공이 굉장히 매력 있는 사람으로 표현이 되어 있어서 조금 끌렸달까? 이미, 안드레 애치먼 작가님의 [그해, 여름 손님] (루카 구아 다니오 감독님의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원작 소설이다)을 읽었었기 때문에, 내가 퀴어 소설에 그다지 어떤 편견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때 [그해, 여름 손님]의 심리를 굉장히 섬세하게 표현한 데에 대한 좋은 인상이 있어서 어쩌면 이 책을 선택하는 것에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가스 그린웰 작가님의 [너에게 속한 것]
사실 처음에는 조금, 아니 불편한 마음을 느꼈다. 조용하지 않은 카페에서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뭐랄까 소화가 안 되는 느낌? 역시 이런 적나라한 소설은 불편하다고 느꼈다. 화자이자 주인공이 (이 책은 일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미트코를 만난 건, NDK지하 화장실이었다. 게이 남자들이 성매매를 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화자는 미트코에게 매료된 부분을 가감 없이 말하는데, 나에게 그것은 단 하나도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책을 읽을수록 도대체 왜 미트코에게 주인공이 헤어 나오지 못할까? 계속해서 고민했다.
아마, 이 질문이 이 책을 계속해서 읽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책을 정말로 한자, 한자, 화자와 마찬가지의 조심스러운 태도로 다 읽고 나면, 조금은 아주 조금일지라도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것은 결국 사실은 자기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 이 주인공을 계속해서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미국에서 불가리아로 온 남성으로 좋은 학교에 영어선생으로 일을 하고 있다. 나중에 가면 알게 되는데, 이미 학교에, 그러니까 자신이 일하고 있는 직장에 첫날 자신의 성향에 대해 가감 없이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NDK지하 화장실에서 돈을 받고 자신의 성을 파는 미트코를 만난다. 그리고 처음의 서비스(?)부터 이미 자신이 건넨 돈에 미치지 못했음을 인지하지만, 그리고 결국 계속해서 이 남성에게 이렇게 휘둘릴 것임을 알지만, 그는 미트코를 떨쳐내지 못하고 계속해서 휘둘린다. 그를 집에 들이고, 그가 필요하다 하면 돈을 주고, 그리고 미트코 역시 문득문득 주인공을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다.
이 책은 1장, 2장, 3장으로 나뉘어 있다. 1장은 조금 읽기가 힘들었다. 역시 굉장히 감정이 섬세하게 표현이 되어 있어서 주인공이 굉장히 예민하고 조금은 불안하고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걸 이용하고, 또 기꺼이 이용당하는 주인공이 정말인지 너무나도 답답했다. 주인공이 미트코에 대해 떠드는(?) 모든 소리가 마치 변명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미트코를 향해 욕을 할 수도 없다. 사랑하지는 못하겠지만, 다소의 연민을 가진 채, 조금 불편한 마음으로 그를 보게 되었다.)
늘, 어떤 부탁을 해왔다. (...중략...) 다른 사람은 절대 누르지 않는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두 가지 상반되는 욕망으로 찢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편에는 고독한 일상(글쓰기와 책)에 대한 욕망이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미트코의 존재가 가져다주는 전율과 그로 인한 일상의 완전한 붕괴에 대한 욕망이 있었다.
[너에게 속한 것] - 가스 그린웰 p.61
그리고 2장 원하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주인공의 어린 시절로 그리고 주인공의 아버지의 이야기와 할머니의 이야기, 그러니까 주인공의 배경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주인공의 과거를 보여줌으로써 주인공이 왜 이렇게 미트코 같은 사람에게 휘둘리는지 그리고 다른 소설이 으레 그렇듯 자신이 게이임을 어떻게 알았고, 또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같은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분명 그런 부분도 없었다고는 말을 못 하겠지만, 2장을 읽고 난 후 나는 그냥, 이 주인공을 좀 더 이해하고 알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만약 내게 알게된지 며칠 안된 친구가 있다면, 그 사람에 대해 굉장히 단편적인 것들만 인식을 하게 되어 그 사람의 행동에 오해를 가지게 되겠지만, 친하게 지내면서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어쩌다 어릴 때 이야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그 사람의 행동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그런 느낌? 그러니까 주인공의 더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를 좀 더 알게 되고, 무엇보다 주인공과 좀 더 친밀해진 느낌 마치,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밀 얘기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그리고 조금 더 당황했다. 그 사람이 너무 평범하게 나, 그리고 내 주변에 있을법한 흔하디 흔한 사람인 것 같아서...
물론 그가 겪은 일들은 조금 특이 할수 있었다. 그래서 '평범함'이라는 단어를 쓴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어떻게 아버지의 강인하고 커다란 몸에 매료가 되었다는 내용, 그리고 '친구'관계에서 조금 더 다가갔다 느꼈던 K라는 이가 주인공과 자신 사이에 명확한 선을 그어 상처를 받는 내용이 결국 주인공이 아버지에게 '호모 새끼! 너 같은 건 내 아들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던 그 모든 사건들이 어째서 그를 더 이해하고 또 받아들이게 만든다는 것인지,
그러나 그렇게 이야기 했던 그의 아버지도 굉장히 이상한 것에 빠져있는 사람이었고, 그 '아버지'의 어머니 그러니까 주인공의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을 읽으면서 조금은, 주인공이 겪었던 사건들의 본질을 본다면 그 방법과 강도가 다를 뿐이지, 나에게 아니면 주위에서 어쩌면 적어도 책이나 영화에서라도 보았을 법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도 완벽하고 깨끗하지 않을 테니까,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 행하는 어떤 일이 있을 테니까, 그걸 어쨌든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에게 미트코가 그런 부분의 하나일 뿐이었다고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주인공 및 주변 인물들이 느끼는 마음들 속에 문득 내가 보였을 때,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이 생각이 날 때마다 나는 묘하게 불쾌감을 느꼈고, 또 불편해졌다. 어쨌든 내용은 내용이니까 (퀴어 소설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내용 자체가 주는 묘한 불쾌감이 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은 계속해서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3장, 3장에 가서는 계속해서 아픈 미트코가 나오기 때문일까, 점점 그에게 연민을 가지는 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계속해서 휘둘리는 주인공도 뭔가 이해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또 싫다고 느꼈다. 어쩌면 주인공을 받아들이고 나자 그에게 설득을 당했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책을 읽으면서 미트코가 처해있는 상황이 그리고 기차에서 만난 아이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성격이 어떤지를 알기 때문에, 소설 속 불가리아의 상황 속에서 미트코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랬을 수도 있다.
처음의 불편한 느낌은 결국 책을 덮을 때에는 희미해졌다. 나는 결국은 미트코를 밀어내는 데 성공한 주인공에게 안도감을 그리고 결국 주인공에게도 밀어내어진 그리고 곧 죽는다고 했던 미트코에게도 깊은 연민과 안쓰러움을 느끼며 이 책을 덮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버려지는 청년들이 아니, 버려지는 이웃이 생기는 사회에 주인공처럼 분노를 느꼈다.
난 거짓말쟁이가 아냐. 미트코가 이제는 가만히 서서 말했다. 날 거짓말쟁이 취급하지 마. 나는 형한테 한 번도 거짓말 한 적 없어. (... 중략...) 마트코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제는 그럴 힘이 없는 듯했다.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을 느끼며, 나는 그의 얼굴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빛바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얼른. 그가 말했다. 야레 베, 돈만 주면 갈게. 더는 귀찮게 안 할게. 하지만 나는 고게를 저었다. 안 줄 거야. 내가 말했다.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이제 끝났어,라고 말했다.
[너에게 속한 것] - 가스 그린웰 p.254
작가님의 섬세한 필체 그리고 담담한 어조로 자신이 느끼는 수많은 감정을 고백하는 것이 좋았다. 그래 한 사람에 대해서도 그리고 어떤 사건에 대해서 우리는 분명 다양한 감정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한 두 가지로 일축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러지 않았다. 미트코에 대해서도 그는 마치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야비하다. 주인공을 그를 향해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고 그 부분이 좋다고 말하다가도 그가 돈을 가지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치 주인공처럼 나 역시 미트코를 혐오하고 싫어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연민을 느끼고 안쓰럽게 여긴다. 그러나 마지막에 미트코가 문득 말을 걸었던 아이의 부모처럼 그런 사람이 다가온다고 생각하면, 어쩌면 혐오를 느끼며 피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혐오... 라기보다는 아마 두려움일 거다. 아니 어쩌면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결벽적으로 느껴지는 혐오일 수도...
바로 이전에 읽었던 소설 프레드릭 배크만 작가님의 [불안한 사람들]은 전체적인 유쾌함 속에 안타까움이나 불편함, 답답함 그러다가 또 따뜻함을 느꼈다면, 이 소설은 완전히 반대다 불편함 속에서 온정과 따뜻함과 또 동시에 굉장히 서늘하고 차가운 세상을 느꼈다.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감정을 끊임없이 읽었고, 나 또한 다양한 감정을 끊임없이 느꼈다. 그래서 소화를 시키는데 조금 오래 걸리고 전체적으로 조금 불편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읽었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이해가 안돼서 이해가 되는 부분은 이해가 돼서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라는 이 책에 대한 평가를 읽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저 과장된 홍보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생각하는 고전은 (나는 고전을 잘 모르고, 안다 해도 단편적이겠지만,) 일단 절대 변하지 않는 인간의 다양한 성격을 깊게 관통하고, 또 다양한 각도로 다양한 시각으로 다양한 해석을 낳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대성을 잘 반영하면서도 동시에 전 세대를 아우르는 어떤 통찰과 감성이 있어야 한다고 그런데 이 책은 어느 정도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람에 따라서 그리고 세대에 따라서 미트코를 바라보는 시선과 그에 대한 해석이 그리고 주인공에 대한 시선과 해석이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어떤 관계성 그리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 역시 내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좋은 책이고 또 깊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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