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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 이지환

by 89K Elisha 2021.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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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키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어떤 책을 읽느냐도 중요하다. 요즘은 솔직히 말하면 전체적으로 조금 지친 상태라 (도대체 왜 지쳐있는지는 도저히 모르겠다.) 읽어야 하는 책을 쌓아두고 쳐다보고 있으면 속이 답답해진다. 그럼 자꾸만 로판 시리즈나 판타지 소설을 읽게 되는데, 이 책들은 내가 '북적북적'이라는 어플을 통해서 작성하고 있는 '읽은 책 목록'에 오르지도 못해서 9월 동안 읽은 판타지 소설과 로판이 10권이 넘어가는데도 기록이 되지 못해 가끔은 억울하다. 이런 종류의 책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는 충분히 좋은 휴식처이고, 또 가끔 특히 어떤 종류의 판타지 소설은 특유의 세계관과 함께 작가가 지향하는 어떤 '철학'도 가지고 있어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대학시절에는 우리나라의 정말 재미있는 판타지 소설들을 예를 들면, 이그니시스 작가님의 [리셋 라이프]라던가 이환 작가님의 [정령왕 엘퀴네스] 같은 소설을 외국에 소개하는 번역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요즘 우리나라의 웹툰이나 웹소설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주 허황된 꿈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무튼 그렇게 가벼운 책들만 읽고 있으려니 또 자연스럽게 교양서나 조금 진지한 책을 읽고 싶어 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추석이 지나니 서평 마감이 눈앞에 당도했다. 아주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행히 그중 가장 첫 번째 책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고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서 읽었다.

이지환 작가님의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 이지환


사실 부제가 - 탐정이 된 의사, 역사 속 천재들을 진찰하다 -라고 하길래 솔직히 시간여행을 하는 소설책 같은 건 줄 알았다. 제목도 부제도 그리고 해골이 그려진 핑크색의 표지도 마음에 들어 서평단 신청을 했는데, 정말 운이 좋게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와서 매우 기쁘다.

책의 내용은 내가 생각했던 어떤 소설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교양서'이다. 주 내용은 역사서에 이름을 올린 위인들이 가졌던 특이한 병력을 짚어 나가는 것인데, 현재 의사이신 작가님께서 전문적이고 동시에 맛깔스럽게 그들의 병을 설명해 주신다. 책의 전개 방식은 정말로 '탐정'이 된 것처럼 작은 단서 조각을 모아 병명을 찾아나가는 식인데, 실제로 탐정이 일기처럼 쓴 탐정 노트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세종대왕, 도스토예프스키, 모네와 같은 인물은 이름만 들어도 그 사람의 행적을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들인데, 나는 도스토예프스키가 간질에 걸렸다는 것을, 모네가 백내장을 앓았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세종대왕의 이야기 역시 너무나도 흥미로웠는데, 학창 시절에서부터 역사를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고, 공무원 준비를 하거나 한국사 능력시험을 하면서 세종대왕의 수많은 업적을 공부했던 나도 세종대왕께서 성병과 당뇨로 고생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것이 매우 잘못된 상식이었다는 것을 알고 너무나도 놀랐다. 과연 세종대왕의 병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를 가르친 교수님들도 몰랐을 것 같다.

또한 모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 일 순위로 항상 꼽는 작가인데, 백내장을 앓는 동안 변화했던 그의 화풍에 대한 내용은 전혀 몰랐었다. 책에는 그 당시의 그림도 함께 보여주었는데, 만약 내가 다른 곳에서 봤다면 이건 모네의 그림이 아니야 라고 했었을지도 모르겠다.

모차르트는 죽기 일보 직전까지 휘파람을 불어서라도 작곡을 했고, 우리가 흔히 (아마도 특히 [아마데우스]라는 작품 때문에) 라이벌이자 모차르트를 질투하는 인물로 알고 있는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질투하기는커녕 그와 함께 작품 활동을 했고,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는 좋은 친구 사이였다.

이렇게 우리가 흔히 잘못 알고 있는 이러한 상식을 작가님께서는 그들이 가지고 있던 또는 급작스럽게 발병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던 '병'을 통해서 바로 잡아 주셨고, 더불어서 외과와 내과의학의 역사와 상식을 알려 주셨다.

마취제가 발견되기 전에는 사람이 도망가거나 움직이지 못하게 꽉 잡거나 묶어서 수술을 했고, 이러는 동안에 수술이 잘못되어 잘라야 할 부위가 아니라 다른 곳을 함께 자르거나 (예를 들면 고환이라던지, 수술을 보조하던 이의 손가락이라던지) X선의 발견이 어떻게 의학계를 들썩이게 해서 남용되었다던지, 라듐이라는 지금은 위험물질로 분류되는 물질이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켜, 이를 이용한 크림이 나왔다거나, 라듐을 녹인 물을 매일 마시던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 하는 등의 이야기는 끔찍했지만, 그러한 과정들 속에서 수많은 희생자들이 있고 나서야 지금의 현대의학의 모습이 갖추어져 그 혜택을 내가 받는 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숙연해졌다.

그리고 또 니체라던가 밥 말리와 같은 세상에 변화를 가지고 온 인물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허망하게 죽음에 이르는 내용을 보면서는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이러한 '뒷 이야기'에 새삼 매료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푹 빠져 읽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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