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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슬픈 세상의 기쁜 말 - 정혜윤

by 89K Elisha 2022.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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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뚜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생각에는 그들의 삶이 반영되어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누군가를 너무 쉽게 판단하면 안 된다고 겉으로는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나는 사람들을 대하고 있을까?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까? 

 

 스콧 피츠 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읽다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어질 때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네가 가진 장점을 다 가진 게 아니라는 사실만은 기억하렴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김보영역) 

 

 누군가를 판단하고 비판하는 일은 너무나도 쉽다. 하지만 그 사람의 행동의 기승전결을 파악하는 일,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애석하게도 우리의 뇌는 쉬운 길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방송을 하면서 자주 소개하는 책 중 하나인 프레드릭 베크만 작가님의  [오베라는 남자]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인데, 보통 그때의 키워드는 '이웃'이다. 우리가 얼마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가? 이해하려고 하고 있는가? 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나는 이 [오베라는 남자]라는 책을 소개한다. 처음 애플 매장에서 흔히 말하는 '진상짓'을 하고 있는 오베를 보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난다. 그러나 책을 덮을 즈음 다시 이 애플 매장의 이야기를 읽는 우리는 오베에게 불친절한 애플 직원이 답답해진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오늘 포스팅할 책은 바로 이런 책이다. 내가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일지 모르는 누군가를 이해하는 책,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책 

 

정혜윤 작가님의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슬픈 세상의 기쁜 말] - 정혜윤

 

 이 책은 단어를 위주로 진행되는 '에세이'인데, 뭐랄까 작가님의 혼자만의 생각을 담은 책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책이다. 먼저 작가님이 만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다음 작가님의 생각과 이야기가 진행되는 방식의 책. 그렇다고 완전히 인터뷰 형식은 아니고, 작가님의 경험담을 말하듯 진행이 되는 책이다. '이런 사람을 만났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이런 식으로... 그래서 오히려 인터뷰집 보다 편안하게 물 흐르듯 읽을 수 있었다. 

 

"저, 선생님, 알고 싶은 게 있어요. 선생님은 어떻게 해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작은 물고기는 놔주고 금지 어종은 풀어주고 지킬 것은 지키는 사람이 되었나요?"

 어부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렇게 이상한 질문은 처음 받아본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부의 등 뒤로 누구의 소유도 아닌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그건 내가...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정혜윤 

 

 그리고 그렇게 만난 사람들은 정말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들이다. 고기잡이를 업으로 하는 낚시꾼이라던가, 시장에서 떡을 파는 떡집 주인 등 우리가 흔히 만나고 흔히 지나치는 많은 사람들... 언제나 뭔가 '특별한'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익숙해져서 일까, 이 책이 참으로 신선하게 느껴졌다. 작가님의 직업이 라디오 피디이기 때문일까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준다. 그리고 말미에는 자신의 생각을 담았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참으로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약간의 변화가 있다. 평범했던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에세이집 후반부에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고기잡이 어부의 '자유'에 매료되어 책을 읽어 나가고,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마음이 열려서 어떤 이야기를 읽게 되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되는 후반에 배치된 조금 심각한 이야기들. 책의 구성이 참으로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책에서 느껴지는 작가님 특유의 담담한 어조, 마음을 굳이 후벼 파지 않고도 마음을 울리는 글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곱씹으면서 읽어나가도록 하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평소에는 어쩌면 피했을지도 모르는 심각하고 마음 아픈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얼굴 찡그리지 않고 나 역시 담담하게 책을 읽어 나갈 수 있었다. 

 

 눈과 머리가 아니라 귀와 마음으로 책을 읽는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참지 못하고 이 책을 좋아할 만한 사람에게 약간의 흥분을 담아 책을 소개했고, 역시나 방송에서도 강추했던 책이다. 문체가 어렵지 않고, 한 챕터 챕터가 호흡이 짧아서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겠지만, 이런 책을 가까이하다 보면, 조금은 연습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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