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본디 걸으면서 생존해 나가던 존재였다. 인류 역사상 가장 길었던 구석기시대를 인간은 걸었다. 자연스럽게 길을 만들고, 읽고 또 찾아내는 능력을 길렀다. 그러나 기술이 발달하고, 시대가 변하면서 우리는 걷지 않으려 노력하게 되었다. 컴퓨터, 자동차, gps등에 의해 우리는 오히려 생존에 필요한 많은 부분을 잃어버렸다.
'뇌전증' 때문에 30년간 해 오던 운전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작가님은 걷는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인간은 모두 걸을 수 있는 존재이고, 걷는 것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말은 우습지만, 현대 사회에 있어서 '걷기'는 생각보다 생활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하루에 우리가 걷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책을 보면서 '나도 걷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사실 웬만해서는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집순인지라, 여행의 즐거움을 담은 에세이를 보면서도 '나도 여행 가고 싶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책에는 사람을 '걷고 싶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토르비에른 에켈룬 작가님의 [두 발의 고독]
사실 이 책은 그냥 더 이상 차를 못 타게 되어서 걷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이런 것을 경험했고, 이런 일이 있었고, 이런 생각을 했다. 하고 마는 그냥 그런 에세이가 아니다 그야말로 '걷기'에 대한 종합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에는 추억과 탐험 그리고 작가님의 깊은 통찰과 새로운 지식을 가득 담은 종합서라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걷기'라는 것 자체에 관한 깊이 있는 탐구서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그저 그런 에세이보다 훨씬 복잡하지만 훨씬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먼저 이 책의 시작은 어떤 '추억'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 걸었던 길이 커서 뭔가 변했음을 느꼈을 때가 있을 것이다. 작가님께는 고조부모 때부터 가족의 소유였던 오두막의 뒷길이 추억의 장소였다. 이 책은 사실상 그 오두막의 뒷길에서 시작해서 그곳에서 끝이 난다. 어렸을 적 가족과 함께 걸었던 그 장소를 작가님은 하나하나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후 수많은 길을 탐험하고, 걸었던 작가님께서는 다시 이 길로 돌아오셨다. 길은 많이 변해있었다. 작가님의 추억을 공유하고, 작가님의 섬세한 묘사에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독자로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 결말이었다. 길도 결국 자연이라는 작가님의 말이 다시금 와닿았다.
길은 자연적으로 생겨나고 분해되며 자연환경에 순응하고 그것이 통과하는 바로 그 자연계의 일부다
토르비에른 에켈룬 [두 발의 고독]
책을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부분은 따로 있다. 사람들은 미지의 곳을 탐험하는 스토리에 열광하곤 하는데, 이 책에는 그런 탐험이야기도 가득 들어있다. 총면적이 430 제곱 킬로미터가 넘는 산림지대 노라 마르카에서 방향을 잃고 길을 잃어버린 이야기는 그 여정의 결말을 뻔히 알 수 있음에도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었다. 물론 내게는 한적한 시골 마을을 걷는 것, 눈 쌓인 동물들의 발자국을 따라 지정된 길에서 벗어난 작가님의 발자국 모두가 새로운 세상에의 탐험이었다. 상황과 감정, 무엇보다 주변의 풍경을 그리는 작가님의 묘사가 돋보이는 부분이 바로 이런 부분이었다.
그곳에는 길도 없었고 문명의 흔적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최대한 멀리까지 둘러보았지만 눈에 보이는 거라곤 전나무뿐이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는 심지어 고도의 변화조차 보이지 않는 거대한 초록의 장막만이 드리워져 있다.
토르비에른 에켈룬 [두 발의 고독]
이 책의 부제가 '시간과 자연을 걷는 일에 대하여'인데, 이 부제가 참으로 와닿았던 이유는 바로 작가님의 통찰과 '걷기' 또는 '길'에 대해 작가님께서 펼치시는 다양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책의 내용을 복잡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진화론부터 낭만파의 문학사조라던가 '왕의 오솔길'과 같은 길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에마 게이트우드'와 같이 '걷기'만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들 작가님이 길을 걸으면서 한 사색 그리고 눈에 담기는 자연을 통해 얻은 통찰들은 이 책을 풍성하게 만들고 재미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저 걷는 일 그 자체에서 오는 우리네 삶을 읽다 보면 나도 문득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걸을까? 하게 되는 것이다.
길에 대한 그리고 걷기에 대한 이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재미있었던 게 워낙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보니 책의 구성이 조금 복잡해서 분명 커다란 줄기를 가지고 읽는 것 같은데도 길을 잃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을 종종 받곤 했다. 어쩌면 이런 부분은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까? 그러나 개인적으로 계속 읽어 나가 보니 마치 아무 목적 없이 걸으면서 관찰하고, 생각하고, 추억에 잠기기도 하는 느낌으로 이 책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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