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져서 모임을 신청했다. ‘작가는 아니지만 글은 쓰고 싶어’라는 모임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신청을 했는데, 그게 하필이면 26일 11시...
완전히 잊고 있었다. 막연히 크리스마스 연휴가 지나서 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11시30분... 11시에 일어나서 문자를 보았다. 독서모임이 11시30분에 시작되니 준비하시라고...
우아.. 미쳤다.
무엇보다 문제는 책을 안 읽은 것이다. 장바구니에 넣어놓은 책을 부랴부랴 구매했다 이북이니까 바로 읽을 수는 있지만, 당장 20분 내로 머리도 감아야 하고 화장도 해야 한다. 15분... 딱 15분 만에 준비하자 마음을 먹고 5분동안 책을 읽었다.
이승아 님의 [기록의 쓸모]
사실 책을 읽지 않고 독후감을 썼을 정도로 사기(?)를 잘 치는 나니까 어느 정도 잘 넘어갈 자신이 있었다.
겨우 5분 읽을 수 있을 만큼만 최대로 읽어 놓고, zoom을 켜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컴퓨터로 사람들이 인용해 놓은 다양한 글을 보았다. 음... 실용서보다는 에세이 쪽에 가까운가? 그럼 꼭 마케터를 강조할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물론 직업이 마케터이기 때문에 아예 배제할 수는 없지만. 기록의 쓸모 하는 제목만 보아도, 앞부분의 내용에서 그리고 사람들이 인용 해 놓은 글만 보아도 마케터랑 별로 상관없이 읽을 수 있는 편안한 책인가 보다.
그 정도만 읽고 나는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그리고 아무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내가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구나를 느낄 수 있는 중대한 실수를 했다. (사실 더 많이 드러났을 수도 있다 내가 느끼지 못했을 뿐 ㅋ)
“표지 때문에 읽을까 말까 고민을 했어요. 마케터를 위험 실용서 같은 느낌이 강해서요. 책 밑에 ‘마케터의 영감 노트’라고 적혀있는데 이게 마이너스인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웃음밖에 안 나오는 이 말로 나는 그 뒤에 내가 어떤 말을 했는지 상관없이 그냥 뽀록이 나 버렸다.
아... 너 책 제대로 안 읽었구나.
... 그냥 솔직하게 말할걸 그래서 사람은 교만하면 안 되고 매사에 솔직 해야 한다.
호스트님께 낚였다.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묻지 않을게요.라고 안심시켜놓고...
나 같은 사기꾼은 딱! 뽀록이 나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아니다 내가 스스로 가서 그냥 물었다. 던지지도 않은 낚싯줄을...)
그래도... 마음에 드는 문구가 뭐였냐?라는 질문에는 제대로 내가 읽은 부분에서 답을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어쨌든 두 시간의 독서모임이 무사히(?) 끝이 나고 나는 집안일과 하또와 놀아주기와 게임과 읽은 다른 책에 대한 포스팅과 하또의 병원 결과에 대한 포스팅과 인스타 포스팅과 기타 등등으로 바빴던 하루를 끝내고 잠자리에서 원래 읽던 책을 집어 들었다.
마케터 이승희 님의 [기록의 쓸모]
그리고 정말, 몇 장 안 읽고 이불을 뻥! 하고 차야만 했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생각날 부끄러움과 함께.
내 입장에선 조금 억울하게도. 내가 읽은 부분에서 몇 장 넘어가는 그 순간부터 정말 마케터로서의 작가님이 계속 등장하기 시작하셨다.
그런데 또 몇 장을 넘기다 보니 혼란스러워졌다. 마치 에세이북처럼 인간 이승희 작가님의 생각을 담은 글들이 하나 둘 나오는 것이다.
그러다 이번에는 또 그녀에게 영감을 준 기록들과 그 기록에 담긴 생각들이 쏟아졌다. 길게 이어지길래 아마 끝까지 이런 방식으로 구성되는 건가 보다. 라도 생각하면서
역시 난 망했어...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 조금 읽다 보니, 그녀의 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
그리고 그녀가 여행지에서 느꼈던 에세이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건 그녀의 기록을 보여 주는 것인가? 아니면 계속 내용이 이어지는 것인가??
책은 끝나가는데 나는 계속해서 혼란스러웠다.
내가 오늘 독서모임에서 망했느냐 망하지 않았느냐는 별로 중요한 사실이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뭐지? 그러니까 이 책은 기록에 대해 말하는 자기 개발서인가? 아니면 마케터로서 이렇게 일을 해야 한다는 실용서의 한 종류인 건가? 아니면 그녀의 에세이인 건가?
... 책을 덮는 순간까지도 나는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이것은 내가 이 작가님에 대해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작가님의 활동을 계속해서 응원하고, 작가님이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영감 노트'를 팔로우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책이 참 좋았다고 말했다.
딱 그녀와 같다고.
그런데 나는 책을 다 읽어도 도저히 모르겠더라 어? 이게 뭐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급한 마음에 내가 빠뜨린 것이 있을까?
프롤로그에 굉장히 분명하게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이 책은 직장인이자 마케터이자 개인인 이승희가 차곡차곡 쌓아온 기록물입니다.
아, 어쩌면 이 책은 정말 모든 기록을 정리해서 모아놓은 것일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마케터의 이야기와 팁이, 직장인의 이야기가 모든 것을 떠나서 한 개인의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는 것이구나, 그 '기록'이구나.
확실하다. 나는 분명하게 이번 독서모임을 망했다.
이건 정말 그 자체로 마케터를 직업으로 가진 작가님의 '영감 노트' 그 자체였던 것이었다.
이 책의 제목 밑에 작게 쓰인 “마케터의 영감 노트”는 결국 이 책과 매우 어울리는 제목이었고, (오히려 실제 제목 보다도) 작가님께서 원하셨던 대로 작가님의 기록물, 이 영감 노트가 누군가의 마음에도 영감을 불어넣어줄, 하나하나가 소중한 기록 그 자체였던 것이다. (아마도?)
사실 영감 노트라는 것이. 완전히 정리된 것이 아니니까 그 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니까.
개인적으로 이 책은 어떤 관점으로, 어떤 기대로 읽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적어도 작가님이 어떤 분이신지 사전에 조금 알아야 할 것 같다. 아니면 이 책 자체가 기록의 모음집이라는 것을 알고 읽는 다면 혼란스럽지 않을 것 같다.
나를 혼란스럽게 한 책의 구성이었지만 어떤 목적의식을 떼어내고 순수한 작가님의 마음을 읽다 보면 정말 영감이 되는 이야기들이 가득 들어있는 책이었다.
+아! 참고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하는 독서모임은 정말 너무나도 즐거웠다.! 소그룹 모임 할 때 내가 진행하려고 했어서 이것도 너무 부끄럽다 ㅋㅋㅋ (하지만 동시에 언젠가 나도 독서모임을 운영하면 이렇게 하면 되겠다는 연습이 많이 되었다. 이 독서모임은 생각할 거리가 좋고 글을 써 보는 그리고 사람들의 글을 들어보는 시간이 될 수 있어서 계속해서 들었으면 좋겠다.)
++ 블로그에 쓰는 글은 안 읽고 쓴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안 읽었으면 쓸 필요가 없어요. ^^
+++ 그리고, 이 표지 정말 마음에 안 든다. 책의 내용을 전혀 알려주지 않는 느낌이야. 흥! (제목도 맘에 안 들어!)
++++ 기록은 소중하다. 모든 역사는 기록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조선시대 왕의 내밀한 사생활까지 전부 기록했기 때문에 그 어떤 역사 보다도 그 시대 상을 제대로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작가님의 수많은 기록들이 작가님의 '마케터'로서의 역량이 되었고, 작가님의 인생의 역사 그 자체가 되었으며, 이렇게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안 그래도 요즘 기록하는 독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 좋은 참고 자료가 되었다. 역시... '영감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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