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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공기처럼 자유롭게 - 칼 노락 글, 에릭 바튀 그림

by 89K Elisha 202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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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 나오는 말 복서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 신념이었다.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다'는 신념, 그리고 '묵묵히 나의 일을 하는 것이 해답'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이 맡은 일을 몸이 부서져라 하다가 결국 도축업자에게 말고기로 팔리게 되었다.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조지 오웰은 또 어떤 생각으로 이 '복서'라는 캐릭터를 만들었을까?

 

 참으로 우스웠다. 나폴레옹과 스노볼 이전에 메이저 영감이 복서에게  '네가 힘이 떨어지면 존스는 돈 몇 푼에 도축업자에게 팔아버릴 것이다'라고 연설하며 혁명을 일으키자 했는데, 그 혁명 끝에 복서는 돈 몇 푼에 도축업자에게 팔려 나갔다. 

 

 그래서 동물농장을 생각하면 그 어떤 캐릭터보다 '복서'가 떠오른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도 한국에도 수많은 사람이 이렇게 '희생'당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세상이 점점 발전해 나가고, AI니, 로봇이니, 우주시대가 될 것이라니 어쩌고 저쩌고, 변화에 적응하려 숨이 가빠오는 현재에도 우리는 1945년에 발표된 소설을 통해 현실을 배운다. 

 

그런데, 칼 노락이 쓰고, 에릭 바튀가 그린 그림책 [공기처럼 자유롭게]에는 또 다른 신념을 가진 캐릭터가 나온다. '파블로' 파란색과 붉은색이 대비되는 광활한 벌판을 자유롭게 뛰어 노니는 듯한 파란색 말 

 

출 처 [공기처럼 자유롭게] 칼노락 글, 에릭바튀 그림

 

끊임 없이 주어진 일을 하지만,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한다'는 복서와는 다르게, '나는 이런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야, 나는 '공기처럼 자유로운'말인걸!' 하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파블로. 

 

책을 펼쳐서 뒤의 표지와 함께 보면, 달리는 파블로 뒤로 이젤의 그림 속 파블로가 있다. 하늘을 보는 듯 달리는 파블로를 보는 듯 멈춰있는... 

 

' 난 공기처럼 자유롭게 살라는 엄마의 가르침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어 ' 

파블로는 자유로운 말이다. 적어도 자신의 생각으론 그렇다. 광활한 대지를 달리다가 올가미에 붙잡히고 말았다. 

'나는 이 농부의 수염을 뜯어 먹어 버리고 싶'지만, 농부가 하라는 대로 밭을 갈고, 어떤 때에는 경마장에서 고삐에 매인 채 달려야 한다. 마차를 끌기도 하고, 계속해서 무언가에 메여 '시키는'일을 해야 한다. 끊임없이 달리지만, 파블로가 생각하는 공기처럼 자유로운 '자유'는 없다. 

 

출 처 [공기처럼 자유롭게] 칼노락 글, 에릭바튀 그림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또다시 신청한 독서모임 때문이었다. 폴란드에서도 그림책을 독서모임에서 읽어주시던 분이 계시던데, 생각보다 그림책이 주는 울림이 참 컸다. 아이들이 읽었던 책을 또 읽고 또 읽으면서 새로운 것을 항상 발견하고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처음에는 팬심으로 사게 된 윤미래 노래, 루시 그림의 [검은 행복]역시 펼칠 때마다 그 그림과 글이 다르게 내 마음에 들어왔기 때문에, 아예 그림책을 주제로 한 독서모임이 끌렸다. 

 

사실 책을 구하는 건 어려웠다. 출판사에서 품절이 되고 그래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책을 안 살 수 있을까 골몰했기 때문이다. 그림책이기 때문에 이북으로 (나와 있지도 않았지만) 읽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책을 사자니 흠... 

하지만 코로나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도서관 정회원권도 만들기가 어려울 것 같아 (도서관이 전체적으로 휴관 중이다.) 그냥 마음을 먹고 구입 버튼을 눌렀다. (그 사이 중고로라도 사볼까? 했던 생각도 좌절된 것은 안 비밀이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나는 구입 버튼을 눌러 책을 소장한 내게 칭찬해 주고 싶다. 짧은 내용에 긴 여운이 있는 이 그림책이 결국 내 마음에 쏙 들었고, 어제오늘 읽고 읽고 또 읽으면서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해 주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유를 생각하고 억압을 생각하고 또 신념을 생각하고 나를 생각하고 이 땅의 수많은 메여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또 그만큼의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싸워나간 사람들을 생각하고 누군가의 신념을 위해 희생당한 사람들을 생각했다. 

 

독서모임 역시 신념에서 자유로 그리고 꿈과 현실로 뻗어 나가고 또 뻗어나갔다. 

 

그림책이 가진 힘을 다시 한번 느끼면서 

 

독서모임이 끝난 뒤에도 나는 다시 이 책을 읽었다. 

 

다시 파블로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파블로의 진정한 신념은 무엇이었을까? '공기처럼 자유롭게'라는 말속에 파블로는 무엇을 넣었을까? 과연 그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은 행복했을까? 그것이 또 하나의 족쇄가 된 것은 아닐까? 또 어쩌면 '엄마의 가르침'이라고 했으니 파블로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엄마에 의해 심어진 신념이었을까?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속에 그의 마음은 단 한 방울도 없었을까?

 

출 처 [공기처럼 자유롭게] 칼노락 글, 에릭바튀 그림



'공기처럼 자유롭게, 길을 찾아 달리는 말' 자신을 소개하던 파블로는 어느 순간 '엄마가 없다'라고 말하기도, 마차에 매여 있는 삶 속에서 '그래 그래도 하늘을 보며 달리니까..' 하기도 한다. 이건 어쩌면 파블로가 현실에 순응하게 된 것일까? 아니면 그냥 이야기의 진행일 뿐일까? 

 

많은 것을 설명해 주지 않은 그림책 특성상 계속해서 상상하고 생각하며 책을 보았다. 동심 가득한 책을 동심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시선으로 읽으면서 나는 동심 대신 계속해서 생각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이, 처음에는 글에 집중을 하고, 그러다가 그림에 집중을 하다 보면, 다시 글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그러다 다시 그림을 보면 또 새로운 것이 보이고, 그럼 또 글을 읽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가지고 그때 그 멤버로 독서 모임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읽어 보셨나요? 제가 이걸 다시 읽어 봤는데요, 이것 보세요!! 파블로가 계속해서 달리다가 걷다가 멈추었다가 다시 달려요! 여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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