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아버지가 사 오신 책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내 기억상 처음으로 아버지께 받은 책 선물은 삼국유사를 만화로 그린 책과,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 그리고 [로미오와 줄리엣]과 역시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 퍼즐 만화책이었다.
이 네 권의 책을 나는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밤을 새워서 읽고 또 읽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대학생이 되어서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책이었는데, 대학생 이후 이사 갈 일이 많아지고 정리하고 또 정리하다가 사라져 버렸다.
사실 아버지에게는 큰 부채감이 있다.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인생을 살아내지 못한 부채감. 물론 그것이 본인을 위해서겠냐만은 나는 단 한 번도 아버지께 자랑스러운 딸이 되지 못했다.
사실, 반항하며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원망을 하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그 부채감이 가끔은 고개를 들어 나의 죄의식을 콕콕 찌르곤 한다. 어디 가서 자랑할만한 딸이 되어 드리고 싶었는데......
어쨌든, 어쩌다 책을 잃어버리고는 읽어보지 않았던 [하이디]라는 책을 다시 읽었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인줄 알았는데, 제목이 [하이디]더라..;; 그 때 내가 읽은 책 제목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맞다.)책이라는 것이 참 좋은게, 언제 읽느냐에 따라 참 마음이 다른다. 생각이 다르다.
물론, 그 당시 읽었던 어린아이용으로 조금 더 편집이 되어서 나온 책과, 지금 읽은 완역본은 다를것이고, 그 어린 시절 읽은 책의 기억이 그 당시 좋아했던 만화 '알프스 소녀 하이디'와 섞였기 때문에, 더 다르게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건 그때도 지금도 참 좋은 소설이라는 것이다.
하이디의 순수함과 그걸 지켜 주는 어른들의 따뜻한 마음씨...
물론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그때는 하이디의 행동과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을 했다면, 지금은 자꾸 등장인물의 마음과 그 대사에 더욱 집중해서 보았다.
하이디가 클라라의 집에서 알프스 산과 할아버지와 그래니를 그리워하며 특히 그래니를 위해 숨겨 놓은 빵을 빼앗겼을 때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엉엉 울면서 읽었다.
어렸을 적엔 하이디를 읽으며 눈물을 글썽이지 조차 않았었는데......
어쩜 그렇게 하이디의 절망적인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지는지,
정말 눈이 퉁퉁 붓도록 갑자기 엉엉 울면서 봤다. 그렇게 시작하니, 하이디가 할아버지를 다시 만난 순간, 그래니를 다시 만난 순간 감동적인 부분 부분마다 자꾸 눈물이 나서 혼났다.
그리고 제제만부인 (클라라의 할머니)가 하이디에게 해 주신, 어릴 적에는 그냥 지나쳤던 그 말씀들이 또 얼마나 마음에 와 닿던지...
어릴 때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도 매우 좋은 경험이었다. 원래 좋아하는 책을 또 읽고 또 읽는 것을 좋아하긴 하는데, 이렇게 지나고 보니 또 새로워서 요즘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 보고 있다.
[하이디]는 알고 보니 굉장히 오래된 책이었다. 하이디를 지으신 요한나 루이제 슈피리 작가님은 무려 1800년대에 태어나신 분이셨고, 하이디 역시 1880년에 쓰인 출간된 책이었다.
지금 읽어도 별로 어색함 없이 잘 읽혔던 책이어서 이렇게 오래된 책인 지 몰랐었다.
무려 150년이 다 되어가는 책이 이토록 꾸준하게 사랑받으며 읽히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꾸준히 사랑받는 고전을 읽으면 생각한다. 정말 변하지 않는 가치가 분명 있는 거라고. 우리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가치, 끊임없이 발전하는 세상에서도 꼭 가지고 가야 한다 다짐하는 가치가 분명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계속해서 지켜 나가야 한다고 말이다.
수많은 책 중에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선택하신 우리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 책을 그 어렸던 나에게 주셨을까?
그리고 그것을 생각하는 나는 이제 어른이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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