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래도록 제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저는 기억도 안나는 아주 어린 나이에 동시를 지었다고 어머니는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방문판매원에게 사기(?)를 당해 사신 한글 공부 세트를 어린 저에게 어떻게 해서든 써먹으려 하셨던 것이 저에게는 한글을 매우 재미있게 공부했다는 기억으로 자리를 잡았고, 그 영향 덕분인지 저는 아주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런 기억과 더불어 학창 시절 학교에서 하는 글짓기 대회만 나가면 받았던 각종 상들과 그것이 만화책이건 판타지 책이건 어쨌든 절대 눈에서 글을 떼지 않았던 독서 습관과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높았던 국어 점수와 논술 점수. 그리고 반 친구 몇 명에게는 어느 정도 먹혀들었던 노트에 끄적였던 인터넷 소설(지금의 웹소설과는 다른 조금은 유치한... 수준의 소설)을 썼던 기억 등은 제가 글을 잘 쓰고, 독서를 좋아한다는 착각 속에 빠져 살아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취미로 하는 독서를 졸업하고, 글쓰기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만들자고 마음을 먹자마자 바로, 저의 착각은 와장창 부수어졌고, 높았던 콧대는 똑! 하고 부러져 버렸습니다. 사실 그저 재미있는 책이나 글을 읽지 않으면 불안한 저의 성격 때문에 심지어 맛없는 건 읽지 않는 편독 습관으로 빈약한 도서 목록과, 일기조차 매일 쓰지 못하는 꾸준하지 않은 글쓰기 습관을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매일매일, 특히 티스토리로 넘어와 글을 쓰면서 제가 얼마나 글을 못 쓰고, 책을 읽는 눈이 없는지를 느끼면서도 다행히, 크게 방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리 크게 실망하지도 않았어요. 사실 이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요. 눈에 보이는 화려한 포장지 속은 빈 상자라는 것을요. 어찌 되었든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책을 읽고, 또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집어 든 책 중 하나가 바로 이원석 작가님의 [서평 쓰는 법]입니다. 이전에 한 번 읽기를 도전했다가 실패(?)하고, 깊숙하게 집어넣었던 책을 다시 꺼내 들었어요. 정말 제대로 책을 소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서평은 어떻게 쓰는 걸까? 지금 내가 쓰는 것과 많이 다를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확실히 다릅니다. 이원석 작가님의 말씀에 따르면 제가 쓰고 있는 것은 결국 독후감입니다. 서평은 책을 제대로 요약하고, 또 제대로 평가하는 글이에요. 그리고 제대로 평가하려면 감정이 아니라 논리가 있어야 합니다. 수많은 책을 읽어 책을 제대로 알아볼 줄 아는 눈부터 필요한데, 저는 일단 내세울 수 있는 독서목록이 빈약하더라고요. 시작부터 아주 글러 먹었어요. 그리고, 서평을 읽는 상대방이 책을 읽도록 또는 안 읽도록 제대로 된 근거를 가지고 설득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독후감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서평은 전문가가 쓰는 글입니다.
이 책에 의하면 저는 심지어 책을 읽는 방식도 틀렸습니다. 저처럼 빠르게 쓰윽 쓰윽 읽으면 제대로 '평'할 수가 없어요. 어떤 책을 읽던 푹! 찌르면 지금 읽고 있는 부분을 그리고 그 전체적인 내용을(읽었던 부분 까지라도) '제대로' 요약하고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책에 몰입하고 빠져서 읽어야 합니다. 책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확고히 하기 전까지는 내가 지금 읽는 책을 온전히 사랑하고 또 이해해야만 그제야 그 책을 계속 사랑하고 예비 독자들에게 책을 읽으라 추천을 할 것인지 아니면 미워하며 절대 읽지 말라 할 것인 지를 정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느 쪽에 서든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정리를 하자면 서평은 책을 요약하고, 논리적으로 그리고 맥락을 따라 평가하는 것입니다. 작가님의 [서평 쓰는 법]은 참으로 친절하게, 서평이 무엇인지부터, 요약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책을 진정으로 평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왜 서평에 있어서 전문가가 중요한 지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수많은 책을 인용하고, 제시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책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하죠.
그리고 특히 마지막에는 그래서 정말로 내가 '서평'을 쓰려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고, 어떻게 써야 하며, 어떻게 퇴고하고 또 어떤 방향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 지를 알려주십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이 '서평의 교과서 같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부드러운 문체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내용이 조금은 딱딱한 데다 약간은 공격적으로 느껴지는 단호함이 있어서 처음에 책을 펼쳤을 때에는 끝까지 읽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마음가짐으로 다시 읽기 시작한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님께서 올바른 서평 문화, 그리고 활발한 서평 문화가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는 것이 느껴졌고, 또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작가님은 직접적으로 우리나라 서평 문화가 얼마나 빈약한 지를 짚어 주시고, 서평 쓰기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다시 한번 어필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책이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건강한 서평 문화가 자리잡기를 바라는 분이 쓰신 책 이니까요.
서평이란 무엇인가? 어떤 방향으로 접근해야 하고, 무엇을 읽으며 공부해야 하는가? 하는 목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 많은 공부가 될 것입니다. 특히 책을 사랑한다면, 꼭 한 번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저 역시 책에서 소개해 준 다양한 책들을 제 북킷리스트에 넣어 놓고 하나씩 읽을 생각입니다. 당연히 서평가가 될 수 있으면 너무나도 좋겠지마는 어쨌든 제가 그동안 읽은 책들을 그리고 앞으로 읽을 책들을 제대로 '추천'하고 '소개'하려면 나는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가 하는 고민 속 저에게 답을 제시한 책이었습니다.
저는 책을 '재미로'접근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책이 사람들의 '의무'가 아니고, '취미'가 되길 바랍니다. 가랑비에 옷깃이 젖듯이 한 권 두권 읽다가 계속해서 책을 찾게 되는 그런 문화가 형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저 '취미'로 남길지, 아니면 책을 통해 인생을 바꾸어 볼지는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죠. 책을 많이 읽었으나 인생이 바뀌지 않았다고 좌절하거나 비판하는 문화도, 책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해서 사람들을 오히려 부담스럽게 하는 문화도 그리고 책을 읽지 않는다고 부끄러워하거나 책을 많이 읽는다고 허세 부리는 문화도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올바른 문화를 만드는 것이 올바르고 건강한 서평 문화 속에서 발전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제가 가진 '취미 독서'습관을 버리고 '책을 공부하는 독서'습관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읽고 제대로 추천해 드리기 위해서요.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 역시 아직은 배워나가는 과정이지만, (때문에 글이 점점 재미없어지고 있습니다.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 계속해서 여러분들께 제가 읽은 재미있었던 책을 추천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냥 이렇게 꾸준히 배우고, 읽고 쓰다 보면 제가 생각하는 글을 여러분 앞에 펼칠 기회가 있겠네요.
이원석 작가님의 [서평 쓰는 법]은 그런 의미에서 제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읽고, 무엇을 써야 하는지 틀을 다져주는 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독서 태도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펼쳐 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저도 이렇게 누군가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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