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이 떠나고 처음으로 사랑했던 이도 떠나버리고, 습지 내 판잣집에 산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으로부터 고립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이 오로지 주인공 카야의 시점에서 전개가 되어 끊임없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아휴 저 어린 꼬마애가.. 하는 다소 마음 착한 이웃집 아줌마 같은 대사를 생각하며 자꾸만 심장을 콕콕 찌르는 불편함과 마주해야 했다.
카야가 6살 때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아니 떠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는 장면에서부터, 그러니까 카야라는 주인공을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이 어린 꼬마를 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었고, 이 사랑은 계속해서 책을 덮게 만들고 또 동시에 책을 펼치게 만들었다.
작가는 이 고립에서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작가 델리아 오언스는 이 책을 '고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그린 '외로움'에 대한 책이라고 단언했다고 한다. 책 후반부에 카야는 다시 한번 뼛속까지 마을 사람들의 자신을 향한 미움을 느끼며, 그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으로 외친다.
"난 한 번도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았어. 사람들이 날 미워했어. 사람들이 나를 놀려댔어. 사람들이 나를 떠났어. 사람들이 나를 괴롭혔어. 사람들이 나를 습격했단 말이야. 그래, 그 말은 맞아. 난 사람들 없이 사는 법을 배웠어. 오빠 없이. 엄마 없이! 아무도 없이 사는 법을 배웠다고!"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카야가 실제로 마을 사람들에게 행했던 어떤 피해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아무도 찾지 않는 습지에서 홀로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를 '마시걸'이라는 낙인을 찍은 채 온갖 소문을 만들고 미워한 대에는 사실은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카야는 그렇게 혼자 사는 삶 속에서도 끊임없이 어떤 '관계'를 원했다. 누군가와 평범하게 대화하는 삶을 살고, 여자 친구들과의 끈끈한 우정을 느껴보고 싶었고, 다시 엄마가 해 주는 요리들을 먹고 싶었으며, 오빠들 그리고 언니들과 놀고 싶었다. 그리고 테이트... 그와 나눈 사랑을 잊지 못했다.
그래서 생존이었다. 돈이 없고, 먹을 것이 없고 가끔 마을 남자들이 성인식을 치르듯 그녀의 집 앞에서 난동을 피우고, 어떤 시설에 누군가가 데려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래서 정부에서 오는 이들을 따돌리는 것은 그냥 그녀의 삶이었지, 생존의 영역은 아니었다. 그녀가 살아남아야 할 대상은 바로 '외로움'이었다. 버려질 때마다 처절하게 찢겨 나가는 그녀의 심장으로부터 텅 빈 집과 고요 속에서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을 지켜야 했다.
외로움은 점점 커져 카야가 훔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카야는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 존재, 손길을 바랐지만, 제 심장을 지키는 일이 우선이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그리고 그런 카야를 지켜준 것은 결국 습지였고, 습지의 생물들이었고, 자연이었다.
카야는 숨을 쉬는 촉촉한 흙에 가만히 손을 대었다. 그러자 습지가 카야의 어머니가 되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쓴 작가님이 동물학자라고 해서 자연보호가 주제인 책 일 것 같지만, 작가님께서는 철저하게 인간 그 자체를 그려 나가셨다. 그러나 오직 배경으로만 존재하는 ‘습지’를 우리는 주인공 카야를 통해 느끼고 또 호흡하면서, 습지의 아름다움과, 그리고 그 속에 살아 숨 쉬는 수많은 생명체들을 품게 된다. 아주 잠시 지나갈 뿐인 개발자들의 움직임에 카야와 습지 생물들의 터전이 헐어지게 될까 봐 조마조마하게 되고, 카야의 현명한 처사에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는 것이다.
작가가 주장하고, 강조하지 않더라도 독자는 이미 카야와 함께 그녀의 습지를 사랑하게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카야가 습지 속에서 완전히 '혼자서만' 자라지는 않았다. 그녀의 곁에서 그녀의 인간성을 유지시켜준 이들이 있었다. 뭐... 나를 분노하게 만든 테이트(심지어 체이스보다 더 분노했다.) 보다 어린 그녀가 혼자서 홍합을 팔러 왔을 때부터 끝까지 그녀를 돌봐주고 지켜준 점핑과 메이블 부부. 흑인과 백인 사이의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던 시절이기 때문에 백인인 카야를 돌봐 주는 데에 한계가 있었지만, 그래도 언제나 '미스 카야'라 하며 그녀의 옆에 항상 서 있었다. 그저 묵묵히. 그래서 카야는 나중에 점핑이 죽었을 때, '그가 나의 아버지셨다'라고 말하며 그를 추모하기도 한다. 정말 다행이었다. 나는 그들 부부가 카야에게는 '산소호흡기'같은 존재였다고 생각한다.
... 그리고 테이트... 어쩌면 마약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카야를 살려낸 인물, 카야가 '인간성'을 잃지 않음에 나는 테이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메이블과 점핑이 최소한의 의, 식(주는 판잣집이 있으니까)그리고 부모의 역할을 담당했다면, 테이트는 그녀에게 글을 가르쳐 주고, 사랑을 가르쳐 줌으로써 그녀가 정말 '인간답게'살 수 있도록 해 준 것이다. 뭐, 나중에 정말 돈을 벌고 그녀가 제대로 한 사회에 발을 디딜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고 말이다. 심지어 정말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테이트는 카야를 지켰다. 그러나 이미 온전히 카야의 편에 서기로 한 한 명의 독자로써, 나는 테이트를 온전히 받아줄 수는 없었다. 흥!
테이트가 배운 건 카야가 없이는 숨 쉴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참으로 우습게도 습지의 카야의 삶과 같은 이야기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벌어진다. 아름다운 습지를 배경으로 한 소설 속 내용과는 다르게, 삭막한 도심에서 그리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온라인 세계에서 우리는 내가 가진 수많은 편견으로 수많은 카야를 만들어 낸다. 소설의 배경이 1960년대와 70년대를 아우르는 것을 생각해 보면, 책을 읽은 2021년까지 정말 인간은 하나도 변한 게 없구나 하고 자조하게 된다.
마을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카야가 범인으로 지목되는 과정이 정말 너무나도 허술해서 나는 다시 분노했다. 인터넷을 통해 누군가를 마녀 사냥하는 것 역시 허술하기 짝이 없고, 쉽게 이루어진다. 제대로 된 증거도 없이 몇몇 사람들의 말 뿐이라도. 그리고 막상 재판이 이루어지면 사람들은 바람 앞에 갈대처럼 참으로 쉽게 이리 누웠다 저리 누웠다. 흔들린다. 분노했다가 동정했다가 왔다 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정말로 '진실'이 무엇인지는 상관이 없게 되어버린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나 조차도.
가끔 신임 보안관이 폴더를 열어보고 다른 용의자들에 대한 조사를 하기도 했지만 별 성과는 없었다. 세월이 흐르며 그 사건 역시 자연스럽게 전설이 되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그래서 체이스는 왜 죽었는데? 어떻게 죽었는데? 하는 것은 특히 독자에게는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카야가 등장하기 전부터 체이스의 살인 사건을 먼저 다루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책을 덮는 순간, 작가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난 것 만 같은 찝찝함과, 내내 '불편해, 재미없는 것 같아...('재미없어'가 아니라 '재미없는 것 같아'...이다.)'하던 소설이 '와 진짜 대박이야 정말 재미있었어'하고 책에 대한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어쩌면 이런 책이 '고전'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 아닐까? 마치 고전을 읽듯이 '인간'과 '인간사회'의 내면을 가감 없이 스캔한 기분이었다.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그래서 계속 불편했고, 그래서 계속 아팠지만, 읽을 수밖에 없었고,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어 졌다. '이건 꼭! 읽어야 해!'하고...
그래서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진 소설인가 보다. 나 역시 이 책을 '추천'으로 읽었다. [책, 이게 뭐라고]에서 장강명 작가님과 요조가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다크호스로 꼽는다고 해서였다. 물론 그 전에도 여기저기서 이 책을 추천받았는데, 나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 그런데, '다크호스'라는 말이 내 머릿속에 남았다. 그냥 재미있었다, 이런 깔끔한 느낌이 아니라, '다크호스'라니... 다행히 리디 셀렉트에 소설이 있었다. 책을 통해 추천받은 책들이 이북으로 없어서 짜증 나던 차였는데, 바로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마지막으로, 어쨌든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카야가 62세의 나이로 떠돌다 눈을 감은 그 순간까지 행복했겠지? 행복했을 거야. 책에도 그렇게 나와 있으니까. 그럼! 행복해야 하고말고! 하는 마음을 남겨 놓는다. 나는 카야를 처음 본 그 순간부터 그녀를 사랑했으니까. 그래서 눈이 가려졌다는 것을 알고도 다시 내 눈을 가려버렸으니까.
그리고 이유 없는 수많은 미움에 의해 고립되어 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생존해 갈 수 있게 가까운 곳에 산소호흡기 같은 따뜻한 손이 있길 기도해 본다. 나 역시 편견으로 쉽게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을 고치자 반성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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