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우리 세상은 도대체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아무래도 유토피아보다 디스토피아가 많은 이유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뭔가 느끼는 것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결국 인간은 인간의 추악함 때문에 몰락하고, 멸망하게 될 것인가? 마치 모든 생명체들이 시간이 지나면 죽어가듯이 인류 전체가 어떤 죽음의 길을 다 함께 걸어가고 있는 것인가?
이준영 작가님의 첫 장편 소설 파라미터 O 역시 디스토피아를 그린 소설이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읽어왔던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에 서 있는 소설이었다. 지구 상에 또는 다른 행성에서라도 수없이 어쨌든 인류가 인류라고 할 정도로는 남아있던 다른 영화나 소설과는 달리 사리분별이 가능한 사람은 기껏해야 서른 명 남짓. 무언가 생산적인 것을 하려는 마음도, 그렇다고 다시 인류를 번영시킬 생각 따윈 없이, 그저 '쾌감기'라는 것에 의존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들이었다. 다가오는 인류의 멸망을 그저 받아들이면서...
그런데 등골이 참 서늘한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개인 하나하나는 '생존'에 목을 맨다. 곧 죽어버릴 것을 알면서도 다가오는 끝을 피부로 느끼면서도 하루라도 오래 살고 싶어 하며, 그 '오래 버티기'를 위해서는 누구 하나가 죽어 나가는 것에 대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추악함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어차피 몇 명 남지도 않았고, 얼마 살지도 못할 거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오래 살자는 이기심. 나는 그것이 이상했다. 이들에게는 꿈도 희망도 미래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살기'를 바랐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우리가 다 함께 오래 버티기 위해선 낭비되는 식량부터 줄여야 합니다. 이제는 건강한 아이들을 낳아 세대를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섹스를 하는 힘이 다 어디서 나옵니까? 결국 나무가 만들어내는 음식과 산소에서 나옵니다! 무의미한 섹스에 에너지를 버리지 못하도록 하고 그 대신 쾌감기를 쓰게 한다면, 전력의 불필요한 소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
[파라미터 O] - 이준영
"감옥에 있는 놈들도 내보냅시다!"
"그리고 쓸모없는 장애아들도 다 내보내죠! 솔직히 말해 필요 없잖아요!"
[파라미터 O] - 이준영
주인공 조슈는 시설의 유일한 엔지니어이다. 원래 엔지니어였던 그녀의 엄마는 습격을 받았지만, 겨우 살아남아 시설을 나가 떠돌아다니는 삶을 사고 있다. 언제 돌아오냐는 그녀의 물음에도, 그리고 통신기를 통해 얼굴을 보여 달라는 (그러니까 황혼 따위 말고) 그녀의 부탁도 거절하고 그저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말로 둘러댄다. 그러던 중 시설에서의 어떤 사고로 얻게 된, 낡은 무전기의 신호를 따라가면 엄마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밖으로 나가게 되고, 거기서 이브라는 어떤 기계종을 만나 데리고 오게 된다.
다른 기계종과 다른 인터페이스, 운영체계를 알 수도, 작업 프로토콜을 입력할 수도 없었다. 그저 '파라미터 O' 옆에 깜빡이는 커서뿐 어떻게 일을 시켜야 하나 고민하는 조슈에게 이브는 끊임없이 질문한다. 왜 일해야 하냐고 다른 기계 종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을 이브는 마치 생각하고 또 느끼는 것처럼, 그러니까 마치 사람처럼 '재잘'거 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치 신을 모시듯 인간을 '창조주'라 하면서 떠받든다.
"창조주시여. 목적이란 개념에는 어느 정도의 강제성이 있는 거죠? 영원히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아무 상관이 없다면, 그것을 목적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파라미터 O] - 이준영
어쨌든 궁극적 목적을 주입하는 변수 '파라미터 O'를 일하기로 설정하자 이브는 끊임없이 하던 질문을 멈추고 일을 하기 시작한다. 비록 프로토콜 전달이 아닌 '직접'가르쳐야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호의적이었지만, 목사는 '신이 되려 하는 일'이라며 이브의 존재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하필이면 이름도 '이브'였기에 더더욱 싫어한다. 그러나 이브가 전력을 공급할 수 있고, 심지어 자가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시설 내의 모두는 이브를 받아들이고, 2년이 지난 후 이브는 그 수가 엄청나게 증가하여, 원래의 기계종을 대신하고 시설 내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 된다. 그리고 이야기의 방향이 조금 바뀌게 된다. 아마, 여기서 부터가 본격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차라리 이 이야기가 그렇게 증식하게 된 로봇에 의해 지배당하거나 멸망하는 흔하디 흔한 이야기였다면, 책을 덮고 나서 이렇게 먹먹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너무 ‘그럴 것 같아’서 짜증마저 느꼈다.... 인간이라면 그래 이럴 수 있어하고 생각하면서, 내가 인간이기 때문에 느껴지는 심한 자조감... 심지어 ‘쾌락기’마저도 존재의 이유가 있었는데, 목적을 잃어버린 인간, 그건 ‘잃어버렸다’는 말마저 과분했다. 자신들의 존재의 이유를 스스로 버려버린 인간들에게 구역질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치 인간처럼 행성을 정복해버린 기계종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자가 증식한 기계종들이 결국 인류를 대신하여 행성을 덮었다 하더라도, 나는 이 소설은 오로지 ‘인간의 이야기’라고 느꼈다. 분명히 수도 없이 튀어나오는 기계종들이 이야기의 흐름을 가져가는 거 같은데, 예견된 멸망은 결국 인간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그 과정마저도 인간이라면 그래.. 이렇게 멸망당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속이 다시 뒤틀린 건 그저 개인적인 감상일 뿐. 우리는 고작 30명밖에 남지 않은, 그런데 인간이 가진 어떤 다양한 특징의 대표격을 가진듯한 시설 내 인간을 보면서 그 결말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달랐다. 하나씩 밝혀지는 온갖 비밀들 주인공을 내모는 시련 그리고 기계종 그리고 이브...
그렇게 불편하고 짜증 한가득한 기분 속에서도 책은 어찌나 술술 잘 읽히는지 하루 만에 후루룩 읽었다. 몇 시간 걸리지도 않았다. 마치 웹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을 읽는 것처럼 그런데, 리뷰를 쓰는 지금까지도 뒷맛이 왜 이렇게 쓴 걸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후에 읽은 한국 SF소설이었는데, 이렇게나 온도가 다르다. 추운 겨울 길가 한 복판에서도 마음에 몽글몽글 따스함을 느꼈던 김초엽 작가님의 소설과는 달리, 따뜻한 방 안에서 몸을 지지며 읽은 소설인데도 심장이 뻥 뚫린 것 같은 한파가 느껴졌다.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래, 인간은 어쩌면 종족의 생을 스스로 마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 '인간성'과 '존재의 목적'을 잃는 순간. 지구는 아니 어디든 '이 세계'는 인류가 살아 숨 쉬게 내버려 두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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