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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멋진 신세계 - 올더스 헉슬리

by 89K Elisha 2021.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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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labla라는 오디오 플랫폼에서 책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주까지는 8시였는데, 이제는 9시로 바꾸었다.) 잠시 방송 이야기를 하자면, 처음에는 주제만 만들어 놓고 떠들고 놀다가 이제는 두 개의 책을 제가 추천하고, 남은 시간에 주제와 관련된 (가끔은 관련되지 않는) 수다를 떨고, 영화나 책 등을 추천받기도 한다.

 

 얼마 전 SF를 주제로 방송을 진행하면서 정말 많은 책과 영화 등을 추천받았는데, 그중 하나가 올더스 헉슬리 작가님의 [멋진 신세계]였다.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솔직한 이 책에 대한 감상은 읽는 내내 속이 계속 뒤집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이 책에 대한 글을 쓸까 말까 지금도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이 1932년에 쓰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그 상상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지금 쓰였다 해도 어색하지 않을 소설, 어떻게 '인간'을 공장에서 생산하면?이라는 생각을 했을까? 그 발상 자체가 너무나도 '비인간적'이었다. 그러나 또 그렇다고 등장인물들이 아예 '인간'이 아닌가? 그렇지도 않다. 그렇게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버나드'가 보인 양면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성공은 버나드의 머리를 핑핑 돌게 만들었고, 성공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모든 좋은 마취제가 다 그렇듯이) 그때까지는 꽤나 못마땅하다고 느꼈던 세계와 완전히 타협하기에 이르렀다. 그를 중요하다고 인정해주는 한 세상의 모든 질서는 한없이 좋기만 했다. 하지만 성공으로 인해 타협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도 기존 질서를 비판하는 특권을 포기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비판한다는 행위 자체가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는 인식을 드높였으며 그로 하여금 훨씬 큰 인물이 된 듯한 기분이 들게 했기 때문이다.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인간은 ‘공장’에서 태어나고 이미 수정이 되기도 전부터 정해진 운명에 따라 태아 때부터 공급받는 영양분도 달라진다. 그리고 주입을 넘어 선 세뇌된 교육방식 (이 교육방식이 굉장히 ‘야만적’이라고 생각했다)으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구분하게 만드는데, 예를 들어 아기 때 장미를 가지고 놀게 하고 전기충격을 주는 방식으로 장미를 싫어하게 만든다. 정해진 한 가지 일을 하며, 마약을 동원해서 라도 ‘행복’을 강요받는다. 부정적인 감정을 결코 견디지 못하게 만들어 쾌락만을 추구하게 인간을 조종하는 ‘문명사회’ 가족은 물론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유대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회의 모토는 ‘안정’이다. 여기 어디에도 내가 생각하는 ‘인간성’이라고는 없다. 

 

그러나 내 마음에 안 들고 불편했던 것은 이런 문제가 아니었다. 인간성을 상실해서 아예 멸망해버린 내용의 [파라미터 O]도 읽었는데, 이 정도야 뭐... 내가 불편했던 것은 그가 '야만인'을 묘사한 부분이었고, 그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태어난 '존'이 계속해서 '창녀'라는 의미로 '화냥년'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었다.

'인간 공장'과 '소마'같은 것에 대한 내용과 '야만인'이 불편해하는 모든 것은 솔직히 '역겨웠'고, 그런 단어 선택이라던가 일부러 그런 것인지 모르겠는 야만인들(책에 그렇게 나와있다 나는 이 표현도 솔직히 불편하다)을 꼭 그렇게 그려야 했나 아무리 그래도 그런 미래사회에? 지금도 없을?? 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사고를 당해 문명세계와 동떨어져 야만인들과 지내게 된 여성을 그리 더럽게 (정말 위생상으로 너무 더럽게) 묘사한 것도 불편했다. 문명사회와의 대비를 극명하게 보이고 싶었던 것인지 작가의 시대에 인디언에 대한 편견을 그렇게 나타낸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육중한 몸집과 젖가슴으로 눌러대며 레니나에게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포드님 맙소사! 침을 질퍽거리며 입을 맞추는데 전혀 목욕을 안 해서인지 너무나 끔찍한 냄새를 풍겼다.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그리고 이건 번역의 문제겠지만, '화냥년'이라니 완전히 없어져야 할 아픈 단어 아닌가? 다른 많은 단어들도 많았을 텐데 2015년에 번역된 책에 이런 단어를 선택하다니 하는 불편함 때문에 다른 번역서를 찾아볼까? 하는 생각마저 했다. 아픈 역사와 죽을힘을 다해 고향에 돌아와도 환영받지 못하고 보호받지 못했던 여성들의 한이 서린 단어를 그렇게 가볍게 써도 되는 것이었을까? 나는 이 책이 그래서 적어도 1900년대에 나온 줄 알았다. 그런데, 초판 인쇄일이 2015년? 

 그리고 야만인의 마지막 모습도 영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문명세계를 버리고 자신이 원래 속했던 사회로 탈출(?)하거나 아니면 차라리 어쨌든 혼자가 된 곳에서 자신의 문명을 이룩하며 살아가는 내용도 괜찮지 않았을까? 왜 자신에게 채찍으로 때리는 벌을 주고, 그래서 문명인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느냔 말이다. 아직 나는 이해를 못하겠다. 조금 식견이 넓어지면 뭔가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우리들은- 채찍질을- 보고 싶다. 우리들은- 채찍질을-." 
그러자 갑자기 그들은 원하던 구경거리를 보게 되었다. 
"화냥년!" 야만인이 미친 사람처럼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족제비 같은 년" 그는 미친 사람처럼 작은 끈들을 엮어서 만든 채찍으로 그녀를 마구 후려쳤다.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뭔가 생각할 거리는 너무나도 많은 책이었지만, 그걸 알고 있지만, 책을 소화하는 걸 하지 못했다. 그냥 다 뱉어 버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내가 뭔가 부족한 것 같아 속상했고, 한편으로는 글쎄 소화를 해도 몸에 좋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과학만에 강조된 문명사회의 냉혹함, 독재체제가 가지는 인간성 말살의 현장 등 내가 정말 보고 생각해야 하는 문제들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이 책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책이 그런 문제를 다루고 있으니까. 이해하려 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뱉어내기로 했다. 놓친 부분이 많아도. 그런 사소한(?) 문제들로 눈이 가려져 본질을 못 봤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누군가가 내게 ‘멋진 신세계’가 어떤 책이냐고 물었을 때 그냥 ‘모르겠고 나는 그냥 읽는 내내 토할 거 같았어’라고 대답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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