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이 담고 있는 사랑을 믿는다.
헌법 전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 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
법을 집행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은 사랑을 담고 있는 헌법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고, 사실 그렇게 돌아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 뉴스에 나오는 다양한 판례를 보면, 판사들이 정말로 애민을 담고 있는 헌법정신을 가지고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 그래, 헌재 판결은 다르겠지 헌재는 헌법을 수호하는 이들이 판단을 내리고 있는 곳인데, 하는 마음을 가지고, 헌재의 판결을 봐도 가끔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믿지 않았던, 그리고 어쩌면 외면했던 세상의 진정한 모습을 마주 했던 시기, 마주 해야 했던 시기, 더 이상 외면하고 있을 수 없었던 시기 그럼에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없었던 때에 나는 이 책을 읽었다. 평소의 책을 읽는 속도와는 다르게 210페이지의 얇은 책을 나는 천천히 천천히 속도를 내지 않고 읽었다.
정관영 작가님의 [헌법에 없는 언어]
사실, 이 책을 받아 들고 읽기 시작한 한 달 동안 이 책에 온전히 모든 힘을 쏟은 것은 아니었다. 예전 생각도 많이 났다. 전공시험을 앞두고 책상 정리를 하고, 갑자기 안 보던 웹툰 정주행을 하던... 아, 이 책이 전공책 같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내가 법학과를 나왔기 때문에, 너무나도 오랜만에 손에 잡은 법과 관련된 책이 뭔가 새삼스럽게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읽어야 하는 책, 읽고 싶은 책을 다 읽으면 마무리로 이 책을 잡아 들었다.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을 다 한 후 마음에 여유를 둔 시간이 되어야 나는 법의 세상을 마주할 준비가 되었다.
사실 이 책은 내가 첫 장을 읽는 순간부터 나를 매료시켰다.
이성과 합리, 상식과 감정을 요리조리 버무려 한데 그려둔 이 추상화, 아니 추상문은 분쟁을 해결하는 기준이 된다.
[헌법에 없는 언어] 정관영 (17p)
법을 이렇게 잘 표현한 문장이 있을까? 문득문득 책을 들었을 때 이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헌법을 포함한 법은 사실 구체적일 수가 없다. 구체적일수록 보호할 수 있는 인원이 적어진다. 그래서 추상적이다. 특히 헌법은 더욱 그렇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 국민 단 한 사람도 외면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헌법은 그 어떤 법 보다도 추상적이다. 그리고 그 어떤 법 보다 '국민'에 대한 사랑이 녹아있다.
그리고 작가님은 그 '사랑'을 담은 헌법정신에 입각하여, 헌법을 소개하고, 또 그 헌법이 사회에서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 그 쓰임이 잘되었는지 잘못되었는지를 가이드해 주신다. 이 책은 그야말로 '교양도서'이다. 또는 앞으로 사람들이 제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법에 대한 특히, 헌법에 대한 '입문서'라고 봐도 좋다.
생명권,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안전권을 꼭 헌법에 써야만 국가가 이 권리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헌법에 적지 않아도 보장해야 한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권리 조항을 명시하지 않더라도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안전을 보장할 의무를 헌법 10조에 따라 당연히 국가는 진다. 우리가 뼈저리게 느낀 것처럼 핵심은 국가의 실천이다.
[헌법에 없는 언어] 정관영 (p93)
[헌법에 없는 언어]는 헌법이 담고 있는 언어를 소개한다. 자유, 평등, 권리와 의무 그리고 인권 정말 너무나도 추상적이어서 도대체 이 애매모호한 단어가 우리를 어떻게 '보호'한다는 거야?라고 질문하는 우리에게 그 의미를 설명해주고, 이 단어가 사회에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보여주고, 그리고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사실 '법'을 공부하기란 어려울 수 있다 그 속에 담겨있는 단어들은 너무나도 어렵고 (나도 공부할 때 '법률용어사전'을 보면서 공부했다.) 단어를 알아도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법을 달달 외워도 '판례'를 모르면 적용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법을 공부할 때에는 수많은 관련 판례를 익힌다. 그런데 그 판례를 보면 도대체가 하나같이 어렵게 써 놨다. 도대체 뭐라는 거야? 마치 판결문이 어떤 '권위'를 보여준다는 듯 약속이라도 한 듯 한자를 잔뜩 섞어 넣은 판결문은 쉽게 찾을 수 있어도 쉽게 읽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이런 교양서가 중요하다.
이 책을 읽으며, 어렵게 여겨지던 헌법에는 어떤 내용이 있는지, 그 내용은 왜 쓰인 건지 그리고 현재 우리 판례는 그 내용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그 해석은 옳은지 그른지 그리고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사회에 내재된 여러 가지 부조리와 문제들을 마주하였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내가 눈감고 있던 동안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그것은 때로는 정당하고 때로는 정당하지 않았구나를 느꼈다. 그리고 내가 겪었던, 겪고 있는 또는 앞으로 겪을 수도 있는 다양한 사회 문제를 만나면서 그 문제를 헌법은 또는 헌재는 어떻게 바라보고, 또 해결하는 지를 알게 되었다. 아, 그때 이런 걸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도 했다. 내가 잘 모르고 좋고 싫음을 판단했던 다양한 정책이 어떻게 성립되었는 지도 배웠다. 무엇보다 나는 졸업 이후 정말로 법에 관심이 없었구나 반성했다.
내가 하릴없이 기대만 하는 이유는 인류가 만든 현대의 재판제도에서는 판결문을 읽고 수긍하거나 비판하는 것밖에 판결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법원의 '외부자들'이 계속 판결문을 찾아보고 자기 의견을 말하고 쓰고 토론한다면 혹시 '내부자들'이 보고 들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여기에 한 줄 쓴다.
[헌법에 없는 언어] 정관영 (p93)
사회가 변하길 바라고, 뉴스에 종종 나오는 판결이 어이가 없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는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은데,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다. 정치인들, 판사, 그리고 공무원들은 그저 '대리인'일 뿐이다. 그들이 '갑'이 아니라 '을'인데, 나 사느라 바빠 잠시 눈을 감으면 자꾸 국민을 기만하고, 자기 잇속만 챙긴다. 그걸 막으려면 먼저 주인이 제대로 '알아야'한다.
작가님도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어쩌다 판결을 봐도 그저 수긍 또는 비판하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그러나 제대로 알고 제대로 하는 비판이 백이 되고 천이되고, 결국 국민의 목소리가 되면, 아무리 서울대를 나와 법학 세계에서만 20년 30년을 살아온 판사들도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법을 만드는 입법자들도 역시 모여진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사실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나는 편독이 심하고 소설이나 에세이를 많이 읽고, 사실 '법'과 관련된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문유석 작가님의 [미스 함무라비]등 소설을 추천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책은 여전히 '책린이'인 나도 사실은 쭉쭉 읽으려면 읽을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쓰인 책이었다. 아! 이런 책이 많았으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후의 나처럼 법과 사회에 세상 돌아가는 모습에 한 뼘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런 류의 교양서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법에 영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쉬운 언어들로 잘 쓰였다. 작가님의 말하고 싶은 바도 분명하게 읽혔다. 법은 어려울 것 같은데 하며 한발 빼려는 사람에게도 나는 기꺼이 이 책을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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