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가들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 고영성, 신영준 작가님이 쓰신 [완벽한 공부법]이라는 책에서였다. 무려 신혼여행을 산티아고로 갔다는 이야기에서 흥미를 느꼈지만, 그뿐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어쩌면 내게는 첫사랑 같은 우리(?) god오빠들이 <같이 걸을까>라는 프로그램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정말 오랜만에 그것도 5명이서 걷는다는 것을 알게 되어 드디어! 그 길을 TV 화면으로나마 마주하게 되었다.
완전히 새로운 나라,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는 곳, 그 속에서 마주한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나는 조금은 '도전'해보고 싶으면서도 두려웠다. 그리고 이미 남편이 있는 유부녀의 몸인 것을 하는 핑계를 대며 아예 꿈도 꾸지 말자고 되뇌었다. 심지어 나는 30분 등산만 해도 다음날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저질체력이 아닌가? 그리고 사실 그렇게 걸으면서 찾고 싶은 것이 나는 없었다.
나의 믿음 속에서 하나님의 나의 관계가 그 길을 걷는다고 더 돈독해질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문득 나의 로망 리스트에 올렸던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를 살포시 삭제했다. 그러나 그런 스타일의 '여행' 그리고 '모험'은 어쩔 수 없이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나 보다. '청춘의 산티아고 순례 에세이'라는 부제만으로 나도 모르게 이 책, 이우 작가님의 [자기만의 모험]을 읽고 싶다 생각했으니까.
사실 순례는 지극히 기독교 또는 천주교적인 일이다. 책에서도 나오듯 구약시대처럼 이스라엘을 향해 갈 수 없으니, 야고보가 묻혔다는 대성당을 향해 걷는 길이다. 그렇게 지극히 종교적인 색채가 가득했더 순례길에는 더 이상 종교가 없다. '나 자신을 찾기 위해' 길을 걷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파울료 코엘료의 몇몇 작품들을 좋아하지만, 그가 순례길에 이러한 의미를 부여했다는 것을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좀 놀랐다.) 그렇다고 해서 이 길이 '오염'되었다거나 이러한 걸음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를 찾는 여행을 하는 이들이 보고 느낀 것은 그들의 삶에 분명 어떤 양분이 될 것이고, 그것 만으로도 나는 그 길이 지닌 의미를 다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순례의 '의미'부터 되짚어본 책의 내용은 바로 작가님의 실수로 넘어간다. 출발지인 '생장 피드 포르'가 아닌 '생장 드 뤼즈'라는 곳의 열차표를 샀던 곳이다. 엉뚱한 데서 헤매다가 자신의 실수를 깨닫게 된 작가님은 할 수 없이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예기 치도 못한 해수욕에 행복을 느꼈다고 한다. 이미 이틀이 늦어진 순례길, 작가님은 순례가 시작되기도 전에 '여유'를 배우셨던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어렴풋이 느끼셨을 것이다. 앞으로의 여정이 계획대로, 또는 순탄하지 만은 않을 것임을 그리고 생각하지 않으셨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기자고. 그래, '나 자신을 찾는 여정'에 '조급함'은 아마 방해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나도 한결 마음을 편하게 하고 책을 읽었다. 마음에 드는 구절에는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을 붙이면서 다만, 평소같이 않게 책상에 딱 앉아 정자세로 읽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순례길 에세이를 향한 나의 무의식이 만든 어떤 의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여정에서 있었던 일들이 한 편 한 편의 글이 되어 책에 담겨 있었다. 작가님께서 생각하셨던 일들,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계속되는 실수담 자책 마치 내가 순례를 걷는 것처럼 그 여정이 담뿍 묻어나서 한편으로는 대리만족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아, 대리만족이 완전한 나의 만족이 될 수는 없는 거라고 그래서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그러나 작가님의 고찰들이 나 역시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일까? 곧 씁쓸함을 버릴 수 있었다.
작가님께서 신발 때문에 문득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그들은 서로를 '가족'이라 불렀다)과 멀어졌을 무렵 만난 헝가리 출신의 '오쉬'라는 여성의 이야기 덕분이었다. "우리는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잖아"라고 하며 다른 순례자들과는 다르게 8시 즈음 일어나 출발한다고 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태양이 내리쬐기 전에 모든 일정을 소화하려고 하는 전형적인 '순례자 루트'와 다소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처지지 않았고, 또 한층 더 여유롭게 그녀의 길을 걷고 있었다. 작가님도 그 뒤의 순례가 바뀌었을 만큼 큰 인연이고, 큰 깨달음이었는데, 그녀 덕분에 나도 내가 걷는 인생은 나만의 것이고, 남들에 '비교'하여 조금 '뒤쳐지'거나 또는 '다르'다고 해서 잘못된 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고 동시에, 그래 나도 나 나름의 '순례'를 계속해서 하고 있지 않을까? 인생을 걸어가는 것도 어찌 보면 '순례'인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내가 이 책을 정말 잘 읽었다고 생각 한 부분은 작가님께서 순례길에 올랐을 때, 보았던 누군가의 수염이 멋있어서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고, 다른 이가 피우는 파이프 담배가 낭만적으로 보였기 때문에 파이프 담배를 사서 피웠던, 그러니까 누군가를 모방한 모습이 자신의 '개성'이 되었을 때의 내용이었다.
인간이란 패치워크 같은 존재가 아닐까. 세상을 살아가며 배우고 익히고 원하는 것들을 조금씩 짜깁기해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자기만의 모험] 이우 (p.147)
사실 나는 누군가를 '따라 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던 사람이다. 그 사람에게는 있지만 나에게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싫었던 어떤 열등감이었는지, 아니면 나는 나만의 길을 간다는 쓸곳 없는 자만심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싫었다. 그래서 사실 나는 대중성이 높아 인기가 있는 음악이나, 영화, 드라마를 잘 안 보고, 베스트셀러도 잘 읽지 않았다. 그런 내가 바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작가님의 이런 경험과 고찰을 만나게 되어 너무나도 좋았다. 응 나도, 이제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어 참 다행이지? 하고 생각했다.
이 책은 사실 이제 순례길에 오르기 위해 어떤 '정보'를 모집하는 이에게 완벽한 책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순례를 통해 무엇을 보고, 무엇을 경험하고, 누구를 만나고 어떤 생각을 할 수 있는 지를 어렴풋이 보여주는 책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또한,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삶에 지쳐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나의 본질을 찾기 위한 여정에 훌쩍 떠나가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대리 만족뿐 아니라 내가 느꼈듯 내 인생도 하나의 순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수도 있다. 아니면 정말로 짐을 싸서 훌쩍 떠나게 만드는 어떤 동기가 될 수도 있겠지.
이렇게, 누군가의 여행길, 누군가의 배움, 누군가의 고찰 속에서 나는 또 나의 인생을 고찰하고 배웠다. 한편으로는 나를 대신해 이렇게 여행을 해주고, 또 생각을 해주고, 글을 써주어서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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